브란덴부르크 홀릭



최근 바흐의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에 그야말로 중독되었다. 화창할 때나 흐릴 때나 비오는 때나, 기분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그저 그럴 때나, 공부할 때나 놀 때나 잘 때나, 아무튼 거의 매순간 이 곡을 듣고 있는 듯 하다.

이 정도로 특정 작품에 깊이 빠지는 일도 참 오랜만인 듯. 이유를 굳이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딱히 어떤 맥락이나 메시지나 인상을 의도하지 않고, 순수한 선율과 음색 만으로 사람에게 이토록 착착 감겨오는 음악은 거의 찾기가 힘드니까, 당연한 거 아닐까.

소장하고 있는 음반은 레온하르트, 빌스마, 브뤼헨, 카위컨 일가 등 소위 '네덜란드 고음악 커넥션'이 1976~1977년 사이에 정격 연주 스타일로 연주한 것이다. 참가한 이들은 고음악 정격 연주에 있어서 선구자이자 거장으로서 길이 기억에 남게 된 사람들이고, 그들이 남긴 연주 또한 시대를 앞서나간 독창적이고 파격적인 실험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고음악 정격연주가 아직은 완전히 규범화, 양식화의 단계에 접어들지 못했던 시기에 녹음된 이 연주는 그 전에 존재하던 전통적인 연주들(ex)칼 리히터)과 이후 80년대부터 등장하게 되는 '완성된' 스타일로서의 정격 연주들(ex)피노크) 사이에서 과도기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연주가 어중간하게 보이거나 지나치게 파격적인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듣는 이가 자연스럽게 푹 빠지게 만드는 생동감과 꾸밈없이 솔직담백한 표현의 상쾌함이 돋보이는 연주이다.

최근에 프랑스 SONY에서 염가반 두 장으로 재발매된 것을 구입했는데, 위에서 보는 것과 같이 화가 베르메르의 두 작품을 사용한 표지도 마음에 쏙 들고 가격도 더할 나위없이 만족스럽다. 이 좋은 연주를 그간 제법 쌓인 Yes24 포인트를 활용해서 두장 합쳐 1만원에 구매했으니 나로서는 입이 찢어질 정도로 뿌듯할 수 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브란덴부르크 협주곡이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계절인 초여름까지는 계속해서 귀에 달고 다니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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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5/18 20:21 2008/05/18 20:21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해서는 이 작품이 불면증에 시달리는 어느 귀족의 음악 치료를 위해 작곡되었다는 뒷이야기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물론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 이야기의 진위 여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공통적으로 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지루하다는 클래식" 중에서도 가장 재미없다고 소문난 바흐의 작품에 대한 이미지 형성에 있어서 이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영향력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얼마나 지루하면 불면증 환자가 듣다가 잠이 들 정도인 걸까, 하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러한 선입관을 완벽하게 깨버리는 음반이 바로 글렌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입니다. "기인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굴드는 바흐의 작품들을 매우 즐겨 연주하였고, 그 중에서도 가장 사랑받은 작품이 바로 골드베르크 변주곡인 것입니다. 현재까지 정식 발매된 녹음만 해도 4종류나 될 정도니까요. 특히 그 중에서도 제일 마지막의, 굴드가 사망하기 1년 전인 1981년에 녹음된 음반은 동 곡을 대표하는 명반이자 굴드의 가장 널리 알려진 음악적 업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굴드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연주가 그토록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입관을 붕괴시키는 파격적인 연주에 기인합니다. 골드베르크 변주곡 뿐만 아니라 모든 바흐의 작품들은, 대위법을 비롯한 각종 음악 기법의 사용, 논리적으로 구축된 음악적 구조, 그야말로 음악의 "기본" 그 자체만을 추구하는 방향성 등의 요인으로 인해 매우 담백합니다. 하지만 굴드는 마치 즉흥곡이나 초절기교곡을 연주하듯이 바흐의 작품들을 연주했습니다. 극히 주관적인 템포 설정, 약동하는 리듬, 강렬한 악센트와 굴드 특유의 아티큘레이션, 녹음기술자들이 미쳐 다 지우지 못한 굴드의 흥겨운 콧소리(!) 등은 담백하기 그지없는 원곡에 다채로운 색채를 부여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연주가 작곡가 본인이 작곡 당시에 의도하였던 바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굴드의 바흐 작품 연주에 대해 지나치게 연주자의 개성만이 강조되어 원곡의 이미지가 흐려져버렸다는 식의 비판은 굴드가 살아있을 때부터 종종 제기되어 왔고, 정격 연주라는 새로운 연주 경향이 한 시대를 풍미하게 된 이후에는 더욱 힘을 얻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으로 대표되는 굴드의 바흐 작품 연주들에 대해 상당수 애호가들은 여전히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립의 와중에서도 찬반론자 양쪽 모두는 단 한가지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는 바, 그것은 다음과 같은 한 마디로 표현이 됩니다. "Goldberg가 아니라 Gouldberg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상과 같은 논쟁에 대해서는 초연한 자세를 취하고자 합니다. 굴드의 파격적이고 개성적인 연주가 진정 "바흐다운가"라는 것의 여부에 집착하다가는, 이 음반이 지니고 있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퇴색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바흐다우면 어떻고 바흐같지 않으면 또 어떤가요. 설령 제가 아직 접하지 못한 굴드의 다른 바흐 작품 연주들을 듣고 실망감을 느끼는 일이 있게 될지라도, 적어도 이 "1981년의 Gouldberg 변주곡" 연주만큼은 가장 즐겨듣는 음반들 중 하나로 계속 남아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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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6/28 00:51 2006/06/28 0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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