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연"이라는 표현을 최근에는 매우 자제하여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수없이 많은 아마추어 및 프로 평론가들이 하도 많은 음반들에 이런 칭호를 붙이는 바람에, "명연 인플레" 현상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상황이 현재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마추어 평론가들과 애호가들이 자신들의 감동을 표현하는데 이 단어를 남발하는 증상을 보이는데, 개인적으론 이를 조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금기를 깨고 감히 그 단어를 이 포스팅의 제목에 사용하게 될 정도로, 바비롤리 경의 1968년도 "나비부인" 음반은 훌륭했다. 카를로 베르곤치와 레나타 스코토를 필두로 한 성악진들, 로마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리고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각인된 지휘자, 이들 모두가 혼연일체로 어우러져 매우 극적인 오페라 연주를 일구어냈다.
바비롤리 경은 이 작품의 주요 극적 장면들에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상세히 묘사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전체적인 구성의 측면에 있어서 그러한 상세함이 지나치게 극의 전개 속도를 처지게 만드는 일이 없이 듣는 이로 하여금 집중력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 타이틀 롤의 스코토 또한 주연 소프라노를 육체적, 기량적, 심리적으로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이 작품의 중압감을 잘 감내하면서 훌륭한 가창을 들려주고 있다. 당대 최고의 핑커튼이었던 베르곤치의 가창은 역시나 모범적이고, 그 외 이탈리아 출신 조연들과 합창단 또한 적재적소에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익을 담당한다.
푸치니 오페라의 연주 역사에는 두 개의 큰 봉우리가 존재하는데, 하나의 이름은 "칼라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라얀"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이름은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아온 연주들에 찬란하게 새겨져 그 광채를 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비부인"에 있어서는 바비롤리 경의의 해석과 연주 역시 그들 못지 않은 가치와 완성도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 음반은 그 수준에 비해 합당치 못한 홀대를 받고 있다. EMI는 GROC 외에도 두 개의 염가반 시리즈물로 이 음원을 재차 발매했는데, 가면 갈수록 가격은 저렴해졌으나 음반의 구성은 더욱 열악해졌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스러울 뿐이다.
지난 1주간 몰리내리-프란델리와 로마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유명한 "투란도트" 음반을 옆에 끼고 살았다. 지난 주에 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근 관심을 자극하고 있는 작곡가가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푸치니인데, 숱한 그의 걸작 오페라들 중에서 무엇을 먼저 들어볼까 생각하다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와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는 바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내용은 매우 통속적이고 진부한 도식에 딱 들어맞는다. 나라를 빼앗긴 방랑의 왕자가 아름답지만 잔인한 공주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가 제시하는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수수께끼들에 도전하여 끝내는 사랑의 쟁취에 성공한다는, 인류 역사상 수천번 가까이 반복해서 사용됬을 성 싶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외형만 보고, 거들먹거리는 일부 평론가들처럼 "푸치니는 깊이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만한데다가 위험하기 그지 없는 짓이다.
푸치니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자들은 내용의 통속성과 음악적 깊이의 얕음을 지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비판을 일단 수용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푸치니의 음악이 지니고 있는 강렬한 낭만성과 귀를 기울이게끔 만드는 매력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투란도트"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만 해도 그렇다. 이 음반에서건 파바로티의 운동장 콘서트를 통해서건, 솜씨있는 테너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이 아리아의 선율과 감정 표현은 그야말로 듣는 이를 '잠 못 이루게' 만드는 힘이 있다.
노예 소녀 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절대적인 헌신, 그리고 죽음의 비극적 과정 또한 "투란도트"에 있어서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여기에서 푸치니의 탁월하고도 효과적인 선율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까지 증폭시킨다. 류의 마지막 아리아가 끝난 후에 터져나오는 칼라프의 "죽어버렸구나, 나의 불쌍한 류여!"라는 절규를, "무덤덤하고 무심하다"고 평가하면서 칼라프라는 등장인물의 심성을 깎아내리고 더 나아가 그런 인물을 창조한 작곡가마저 몰인정하고 경박한 사람으로 폄하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쓴 이는 피 대신 오일을 몸 속에서 순환시키고 있는게 틀림없다.
작품 자체에 대한 감탄은 이 정도로 해 두고 음반에 관해서 얘기를 해보자면, 일단 푸치니의 고국인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성악가들,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혼연일체로 매우 강렬하고 원색적인 감성을 내뿜고 있음을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이다. 이성보다 감성을 더 앞세우고,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극적인 순간을 더 잘 묘사해내는 연주를 한 여름밤에 듣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북경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극중의 사건들을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게끔 한다. "이탈리아적인 열정과 감성"으로 가득찬 "투란도트"를 듣고 싶다면 이 음반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지 않을까.
물론 이 음반을 이른바 "전통적인 명반"의 대열에 올려놓은 주원인인, 코렐리와 닐손 두 주역의 빛나는 가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의 표현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면이 있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 칼라프 왕자는 영웅적이어야 하고 투란도트는 여신에 가까운 범접하지 못할 경외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최전성기에 이르러 있던 두 드라마티코 계열 남녀 성악가의 탄복할만한 스테미너와 고음 발성은 이 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거기다 더해서, 드라마적인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인 류 역을 맡은 레나타 스코토의 열창 또한 잊혀지지 않을 성질의 것이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을 지적해야겠다. 녹음 연도가 1960년대인 데다가 ART 리마스터링도 적용되지 않은 탓에, 때때로 합창단과 관현악과 성악가들의 발성 밸런스가 잘 안 맞는 곳이 존재한다. 또 곧 발매될 EMI의 푸치니 전집 박스물에 이 음원이 포함된 탓에, 이제 위의 앨범 자켓을 지닌 쥬얼 케이스 전곡반으로는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단일 작품만을 오롯이 수록한 전곡반의 여러 장점들이, 염가 전집 박스물의 경제성과 편리성 앞에 밀려나는 모습은 서글프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ps: 이 음반은 영국 "그라모폰" 2월호의 특집 기사에서 편집장 제임스 인번이 개인적으로 추천한 푸치니 음반들 중 하나이다. 앞으로 푸치니의 4대 오페라 -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 - 들을, 인번의 추천반들을 통해 하나씩 접해볼 요량임을 밝혀둔다.
“한번은 어느 경과구에 대해 그에게 물었습니다. ‘박사님, 여기는 얼마나 빠르게 해야 합니까?’ 해결을 보지 못한 물리학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아, 그건 어떤 소리가 나느냐에 달렸습니다.’” - 세르주 첼리비다케
“서주에서 주테마로 넘어가는 이행부에서 그는 콘트라베이스 부분 다음에 현악의 시작 신호를 너무 작게 주어 손동작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콘서트마스터가 물었지요. ‘박사님, 시작 신호를 더 분명하게 주실 수 없을까요?’ 푸르트벵글러가 대답했습니다. ‘분명하지 않을수록 좋아요.’” - 오렐 니콜레, 1947년 루체른에서 「레오노레」서곡 3번 연습 당시의 일화
“아주 느리게 연주하면서도 듣는 이의 머리 속에 전체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일은 위대한 지휘자만이 가능합니다. 푸르트벵글러가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1950년 푸르트벵글러가 아르헨티나에서 「마태 수난곡」을 연주할 때 나는 보조 지휘자였습니다. 그의 속도는 유행에 뒤졌고 지독하게 느렸지요. 나는 그의 연주 방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내면에서 끊이지 않는 그 거대한 흐름에 감탄했습니다. 그건 그한테서만 흘러나오는 것이었어요. 이 작품을 너무나 강렬하게 느낀 푸르트벵글러는 함께 연주하고 노래한 350명의 연주자들에게 그 느낌을 전달했습니다. 그건 최면으로까지 이어지는 심리적인 힘이었습니다.” - 미하엘 길렌
“그는 연주를 자주 반복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한 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연주했고 마이크로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덕분에 녹음은 훌륭했다. 그때 우리가 막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도입부가 일치하지 않았다. 당장에 전화벨이 울렸다. 푸르트벵글러는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미국이 아닙니다!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합니다!’” - 오렐 니콜레, 1951년 12월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슈베르트 교향곡 다장조 녹음 당시 일화
“푸르트벵글러가 3막 직전에 넣은 「레오노레」서곡 3번은 단원들이 자면서도 연주할 정도의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연습 내내 이 작품에 몰입해 있던 푸르트벵글러는 자꾸만 크레센도를 요구했다. 계속해서 크레센도가 이어지자 우리 콘서트마스터가 악보에 그렇게 적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총보를 들여다보았다. ‘그렇군요, 그래도 이게 더 아름다워요.’ 그토록 그는 음악에 빠져 주변의 것들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 발터 바릴리, 1953년 10월 12일 「피델리오」연습 중의 일화
*이상은 모두 헤르베르트 하프너, 이기숙 옮김, 「푸르트벵글러」(마티)에서 인용함
베토벤 교향곡 전집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스톡홀름 필하모닉, 바이로이트 축제 오케스트라 & 합창단(EMI): 이 푸르트벵글러 유일의 공식 전집에 대한 상세한 감상은 예전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거기에서는 '옥석혼효'라고 평가했지만, 그 후 여러번 감상을 거듭할수록 오래되어 세공이 깨지거나 무뎌진 채로 빛이 바랜 보석더미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음반이다. 명연이니 졸연이니를 따질 것 없이, 클래식을 듣는다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꼭 한번 쯤은 이 전집에 다다르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여기 포함된 1951년 바이로이트에서의 9번 실황이야말로 푸르트벵글러의 연주 스타일에 있어서 일종의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전설적인 전후 공연집"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Tahra): 1951년에서 1954년까지의 일부 연주들을 총 4장의 CD에 수록하고 있는 음반. 전후 시기 푸르트벵글러의 실황 연주들 중에서도 특히 평이 좋은 것들을 선별하여 담고 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베토벤 교향곡 3, 5, 6번 연주, 1954년 루체른에서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브람스의 교향곡 1번 및 하이든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뜻 들어보면 전시 녹음들의 강렬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져 보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푸르트벵글러가 최만년에 도달한 경지를 느끼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게끔 하는 연주들이다.
베토벤 교향곡 7, 8번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rfeo): 1954년 8월 30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있었던 실황을 그대로 담은 음반이다. EMI의 전집에서 조악하기 그지 없는 음질로 아쉬움을 남겼던 스톡홀름 필하모닉과의 8번 연주를 대체하기에 안성맞춤으로, 8번과 같은 '마이너'한 작품에 대해서도 푸르트벵글러가 연구와 탐색을 그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50년대 중반의 녹음으로 음질도 푸르트벵글러의 모든 음반들 중에서 매우 좋은 축에 든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그해 11월 30일에 영면한 푸르트벵글러로서는 빈 필하모닉과의 마지막 공식 연주였는데, 당시 그가 여러 지병들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 자체에서는 병기운 같은건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베토벤의 음악 그 자체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현하는 거장의 모습만이 들어올 뿐이다.
바그너 관현악곡집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Eloquence): 1949년부터 1954년 사이,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가진 여러 바그너 관현악곡 연주 실황들 중 일부를 발췌해서 수록한 음반. 시기도 장소도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녹음 상태도 들쑥날쑥이지만, 다행스럽게도 EMI 베토벤 교향곡 전집의 2번과 8번 같은 '재앙'은 없다. 1951년을 경계로 푸르트벵글러의 지휘 스타일이 좀 더 완숙해졌음을 확인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데, 1949년의 "명가수" 서곡과 1954년의 "장송행진곡"을 비교해보면 그 점이 확연히 느껴진다. 푸르트벵글러의 바그너 관현악곡집이라고 하면 EMI에서 나온 빈 필 및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스튜디오 녹음 연주들이 또한 유명한데, 언젠가 그쪽도 구해서 이 음반과 비교해보면 실로 재미있을 것 같다.
"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 19세기 말부터 세계 제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유럽이 누렸던 '가장 좋았던 시절'. 이 시대의 향취를 자신의 작품들 속에 가장 잘 담아낸 음악가를 선정한다면 모리스 라벨은 아마도 0순위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그의 작품은 틀림없이 "볼레로"일 것이다. 단순하고 짧지만 강렬한 멜로디의, 점층적인 강화를 수반한 반복은 듣는 이들에게 매우 강력한 감정의 파고 앞에 던져지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든다.
하지만 "볼레로"의 위풍당당한 허세만이 라벨의 전부가 아니다. 단지 "볼레로"로만 라벨을 알고 있다면 그의 다른 작품들, 특히 관현악곡과 피아노 소품들을 꼭 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의 애수 가득한 비탄, "엄마 거위"의 목가적 풍경, "밤의 가스파르"를 흠뻑 적시는 몽환의 이미지들, 그리고......
"벨 에포크" 시대의 딜레당트들이 느꼈을 그 모든 감정과 감성들을, 라벨은 자신의 작품들 속에 가감없이 수용해서 100여년 후의 우리들에게까지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번영의 찬란한 외관 뒤에 드리워진,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이 불러일으키는 깊고 어두운 퇴폐의 그림자가 라벨의 작품들에서는 느껴진다.
석양이 지는 어느 저녁에 라벨의 음악을 들으며 와인 반병을 비우게 된다면, 확신하건대 보들레르나 랭보가 된 것 같은, 너무나도 진짜같은 착각을 아주 짧은 한 순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21세기의 보잘것없는 소시민은 생각해본다.
라벨 관현악곡집, 앙드레 클뤼탕스,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1961~62): 오늘날에는 각국의 교향악단들이 지니고 있던 고유의 독특한 "지방적 특색"이란 것이 사라져버렸다고들 하지만, 1960년대에는 아직 그것이 존속하고 있었음을 체감케 해주는 음반이다. 프랑스인 지휘자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악단의 조합이 연주하는 라벨의 관현악 작품들은 프랑스적 감성이란 어떤 것인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특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느껴지는 퇴폐적인 우아함을 동반한 우수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절품이다. EMI 본사반은 폐반되었고, 현재 입수할 수 있는 것은 일본 도시바 EMI와 프랑스 EMI의 로컬반들인데 전자는 값만 비싸고 괜시리 여러장 사게 만드니 왠만하면 후자를 구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라벨 피아노 독주곡집, 파스칼 로제(1974): 얼마 전 집에 잠시 내려갔다가 동생이 사다놓은 것을 발견하고 몰래 들고온 음반.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들은 다 모아도 대략 CD 2장 내에 다 들어가는데, Decca Double 시리즈로 발매된 이 음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딱히 특기할만한 점은 없으나 라벨 고유의 감성을 솔직담백하게 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문을 위한 레퍼런스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연주는 없지만, 그 대신 어느 한 곡 상대적으로 처지는 일 없이 평균적으로 '잘' 연주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밤 중에 잠이 안 오거나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되어, 최근에는 꽤나 총애(?)하게 된 음반.
현대음악이라고 해서 딱히 선입견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쪽을 즐겁게 그리고 손쉽게 접하고 있냐면 당연히 그렇진 않다. 늘 일정한 정도의 관심은 가지고 있으나, 18, 19세기의 음악들도 제대로 즐기기가 힘든 상황에서 20세기 이후의 생경한 음악 세계까지 손댈 정도로 오지랖이 넓은 것도 아니니까.
하지만 그 세계와의 우연한 만남이 현존하는 미국의 미니멀리즘 작곡가 존 애덤스의 "화성학"을 포함한 여러 관현악 작품들이 수록된 이 음반을 사게 만들었다. 컴퓨터 게임 "시드마이어의 문명 IV"라는, 지극히 비음악적인 매개체를 통해 애덤스의 음악 세계와 접하게 되었는데, 솔직히 처음부터 누구의 어떤 작품인지 알고 있었던 게 아니라 그저 게임하다가 보니 자연스럽게 그 음악에 심취하게 되었다, 라는 사연이다.
음반 내지에서 알게 된 바로는 "화성학"은 작곡가가 꾼 3개의 꿈을 바탕으로 하여 구성된 작품이라고 하였다. 그런 배경을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게임하면서 이 작품을 듣게 되었을 때의 느낌은 배경을 알게 된 지금이라고 해서 그닥 달라지지는 않는다. 극히 작은 음의 분절들이 다채로운 변화를 보이며 반복되는 가운데 생성되는 몽환적인 음색은 듣는 이로 하여금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게끔 촉구한다.
현대 미니멀리즘 음악이라는, 익숙한 고전 음악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접하게 된 계기가 철저히 비의도적이고 비음악적인 경험인 컴퓨터 게임이라는 점이 재미있어서 이렇게 글까지 쓰게 되었다. 음악적인 주제인 사이먼 래틀 경과 버밍엄 시티 오케스트라의 연주 그 자체에 대해서는 도리어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애시당초 같은 작품의 다른 연주라는 걸 들어 봤어야 말이지. "문명 IV"에서 사용된 사운드트랙은 이 음반과는 다른 음원을 사용한 듯도 한데, 별로 큰 차이는 못 느끼겠다.
생각해보면 이상과 같은 일련의 경험이야말로 순수한 의미에서의 '음악 감상'인 것일지도? 선입견과 확실한 의도 등의 요소들을 처음부터 배제하고, 명반이니 뭐니 하는 성가신 사항들마저도 무시해버리면서 음악 그 자체에 대한 흥미 오로지 그것 만으로 음반을 사고 들었으니까 말이다. 고전 음악 감상이라는 행위가 실제로는 수많은 관념과 선입견의 제한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런 경험을 하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점은 확실해보인다.
베토벤 교향곡에 있어서 불멸의 금자탑을 세운 푸르트벵글러지만, 그 수많은 녹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1번부터 9번까지 모두 갖추어진 전집은 이 EMI 레퍼랑스 시리즈의 단 한 종 뿐이라는 것이 참 아이러니컬합니다. 영상물까지 합쳐 자그마치 6개의 전집을 기록하고 있는 카라얀과는 양적인 측면에서 비교의 대상조차 안 되고, 게다가 질적인 측면의 평가에서도 해당 분야에 있어서 지휘자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 비교해 볼 때 상대적으로 좀 박한 대우를 받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엄연히 "공식" 전집이라고 할 수 있는 EMI의 이 전집에 수록된 녹음들보다, 타라를 비롯한 각종 마이너 또는 복각 레이블들이 내놓고 있는 전시 및 전후의 각종 실황 또는 비공개 녹음 음반들이 애호가들 사이에서 더 널리 선호되고 있다는 사실이 이러한 생각에 근거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식 전집의 괄시 현상"이 단순히 당시 녹음 기술의 한계로 인해 발생한 음질 상의 문제로 치부하기에는 좀 문제가 있는 것이, 동시대 지휘자들인 브루노 발터나 토스카니니, 조금 뒷세대라고 말할 수 있는 칼 뵘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의 경우에는 각각 무한한 애정을 표출하는 분들이 상당히 계신다는 점입니다. 특히 DG 본사로부터 버림받은 뵘 선생님의 베토벤 전집을, 음질 문제가 전혀 해결되지 않은 이탈리아 DG 로컬 반으로나마 소지하고 있는 뵘 애호가 분들의 애정에는 그저 탄복할 따름입니다. 그런데 유독 이 EMI의 푸르트벵글러 베토벤 교향곡 전집 만은, 그처럼 "미칠듯이" 사랑해주는 분을 아직까지는 뵌 적이 없습니다. 전시 녹음들이나 미공개 실황 음원들, 그리고 이 전집에 수록되어 있는 몇몇 녹음들의 개별 음반에 대해서는 엄청난 애정과 집착을 보이시는 푸르트벵글러 애호가분들의 이런 경향은 매우 의아롭다고 할 수 있겠죠.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게 된 원인으로는 EMI의 전집이 말 그대로 "옥석혼효"라는 점을 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여기 수록되어 있는 베토벤 교향곡 1번부터 9번까지의 음원들은 푸르트벵글러가 1948년부터 1954년 사이에 빈 필하모닉, 스톡홀름 필하모닉, 바이로이트 축제 오케스트라, 도합 세 연주단체를 이끌고 때로는 스튜디오에서 또 어떤 때는 실황으로 녹음한 것입니다. 이처럼 음색과 성격이 판이한 각각의 연주단체들과 함께, 각양각색의 녹음 조건 및 환경에서 연주한 기록들이다보니 음질과 연주 수준의 양 측면에 있어서 전체적으로 고른 수준을 달성치 못하고 들쭉날쭉 천차만별이 되고 말았습니다.
특히 현존하는 푸르트벵글러 유일의 베토벤 2번 교향곡 연주 녹음인 1948년 빈 필과의 런던 알버트 홀 실황의 음질은 그야말로 재앙에 가깝습니다. 잡음과 히스로 자글거리는 음질 사이로 언뜻 비춰지는 연주 그 자체의 유려함이 그저 안타깝기만 할 뿐입니다. 또 4번, 5번, 7번의 경우에는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덕분에 음질은 매우 양호한 편이지만, 정작 연주 자체는 베를린 필과의 전시 녹음들에 이미 매료되어버린 애호가들에게는 왠지 아쉬워보이는 데가 있습니다. 8번은 음질도 2번 다음으로 안 좋거니와, 연주 단체가 스톡홀름 필하모닉인 탓에 "푸르트벵글러 하면 베를린 필 아니면 빈 필"이라는 세간의 인식에 비추어볼 때 역시 서운한 감을 줍니다.
반면 1번, 3번, 6번, 9번의 연주는 과연 푸르트벵글러라는 찬사가 절로 나올 정도로 훌륭합니다. 베토벤 교향곡의 세계에 대한 푸르트벵글러의 깊이있는 탐구의 대상이 그저 유명하고 인기있는 일부 작품들에만 한정된 것이 아님을 잘 보여주는 1번 연주는 이 전집에 역사적인 기록으로서의 의미를 부여합니다. 또 44년 "우라니아 반"의 광포함과 음울함을 광대한 거시적 안목으로 대체하여 완숙미를 보여준 3번, 진짜 '전원에서의 여유와 평화감'을 만끽할 수 있는 6번, 그리고 그 동안 너무나 많이 언급이 되어 저같은 햇병아리 감상자가 왈가왈부하기가 두려울 정도인 역사적인 1951년 바이로이트 축제에서의 9번 실황 등은 푸르트벵글러의 예술 세계가 지닌 무게감과 위력을 여실히 증명해주는 호연들입니다.
총평하자면 고르지 못한 개별 녹음들의 음질 및 연주 수준에도 불구하고,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교향곡'이라는 어느 거대한 세계에 입문코자 한다면 반드시 갖춰야 할 음반이라고 하겠습니다. 물론 여러 지휘자들의 각양 각색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반을 두루 섭렵하고자 하는 분들도 이 음반을 접하지 않고 넘어가기란 힘들 것입니다. 설령 듣고 난 후 음질에 한 번, 그리고 현재의 정격 연주 스타일과는 정반대의 느릿느릿하고 장중한 템포에 또 한 번, 이렇게 두 번 실망을 느끼게 될지라도, 하다못해 "이것이 이전 세대를 풍미했던 한 명인의 자취이다"라는 감회 정도는 충분히 느끼고도 남으실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왠지 좀 있으면 NAXOS가 이 전집과 동일한 또는 그보다 더 우수한 내용을 수록하면서 동시에 더 좋은 음질로 복각한 푸르트벵글러의 베토벤 전집을 내놓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자꾸 든다는 사족을 달아 봅니다.
"성인"과도 같은 성품을 지닌 지휘자로써,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으로 21세기가 된 지금도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브루노 발터.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그의 음반 대부분은 4, 50년대에 미국에서 뉴욕 필과 콜럼비아 필을 이끌고 녹음한 것으로, 비교적 노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전성기가 20세기 초반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점에서, 발터 역시 토스카니니와 마찬가지로 녹음 기술의 혜택은 그다지 누리지 못한 명지휘자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극히 적은 수의 음반들만이 제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유럽에서 최전성기를 누리며 명성을 날리던 시절의 발터의 음악 세계를 접해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 중에서도 1938년 빈 필과 함께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말러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한 실황을 담고 있는 이 음반은 거기에 담겨 있는 음악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 녹음 과정을 전후하여 지휘자 본인이 처하게 된 고난과 시련의 사연으로 인해 듣는 이들의 마음 속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연주 자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있는 발터인 만큼, 악장 하나 하나, 음절 한 소절 한 소절마다 마치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고 있는 늦가을 오후의 정경을 연상케하는 느낌을 줍니다. 말러의 교향곡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선입관 - 요란하고 시끌뻑적하다는 - 에 걸맞는 장면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가장 요란스럽게 연주되어야 할 3악장마저도 왠지 각이 둥글게 무디어져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 한편으로, 연주 시간이 70분 정도로 매우 빠르다는 점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상당히 빠른 템포를 취하고 있지만 맹렬함이나 광폭함과는 100만 광년 쯤 거리를 두고 있는 음색을 들려준다는 점은 발터의 명인기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 하겠죠.
이 음반이 녹음될 당시 발터가 처해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유태인이었던 발터는 1936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게 된 이후부터 음악 생활의 터전들을 하나 하나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 필을 비롯한 독일 국내의 유수의 교향악단과의 연주가 불가능하게 된 것은 물론이었고, 나치 정권의 위세가 강해질 수록 유럽 본토에서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가게 되었습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게 된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의 음악적 경력을 쌓아왔던 빈에서마저도 포디움에 설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요. 이 음반에 수록된 연주회가 열린 지 1주일 후, 발터와 빈 필의 몇몇 동료들은 하켄크로이츠가 휘날리는 빈을 떠나 유랑자의 신세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박해와 수난 속에서도, 발터는 굴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 헌신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지휘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였던 것입니다. 이 음반은 그와 같은 발터의 음악에 대한 헌신을 역력히 보여주는 불멸의 기념비와도 같습니다. 음악 그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이후의 연주들 중에서 이에 버금가거나 심지어는 능가한다고 할 만한 명연들도 상당히 많고, 녹음 상태를 문제시할 경우 아무래도 70년 전의 모노 녹음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시대 이후의 녹음들 앞에서는 명함꺼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음악가의 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동곡의 다른 녹음들에는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이 음반은 "마이스터징거"의 규범적인 연주로 예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주로 베를린 필, 빈 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그 방대한 음반을 녹음해낸 카라얀이 매우 드물게도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을 지휘하여 남긴 녹음이란 점, 그리고 르네 콜로, 헬렌 도나트, 칼 리더부쉬, 테오 아담 등의 화려한 배역들이 참가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음반을 들어볼 가치는 충분할 것입니다. 게다가 금상첨화 격으로 연주 그 자체도 전성기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카라얀과, 스튜디오 녹음이란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높이 평가받을만한 훌륭한 가창을 선보이는 출연진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가히 천의무봉에 가까운 외형적 완벽함을 뽐냅니다.
오케스트라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이상에 가깝다고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마이스터징거"의 트레이드마크인 1막 전주곡은,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이 아니라 수족같은 베를린 필과 함께 했다고 해도 이 정도로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완벽한 기교와 표현을 들려줍니다. 1막과 2막 각각의 대미를 장식하는 난장판 장면에서는 소란스러움이 극에 달하면서도 뭉개지거나 흐트러짐이 없는 균형감을, 곳곳에 산재해있는 서정적인 장면들에서는 또 놀라울만큼 여릿한 피아니시모를 보여주며, 위풍당당함이 요구되는 축제 장면이나 3막 마지막 피날레에서 느껴지는 합주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당대 최고 수준의 가수들 역시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는 호연을 들려줍니다. 사랑 앞에 물불 가리지 않는 젊은 기사 발터를 노래하는 르네 콜로와, 에파를 깜찍함이 지나쳐 영악스러울 정도인 가운데서도 풋풋한 순진무구함이 드러나는 귀여운 아가씨로 묘사해낸 헬렌 도나트의 연기력과 가창력은 만점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외에도 파이트 포그너를 부른 칼 리더부쉬, 다비드를 노래한 페터 슈라이어도 합격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좋은 가창을 들려줍니다.
다만 늙은 홀애비 두 사람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약간씩 아쉬움을 느낍니다. 테오 아담의 작스는 좋게 말하면 가부장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마치 인간이 된 보탄처럼 권위적으로 들리는 탓에, 구두장이 명가수의 유머러스함이 조금 부족합니다. 또한 에반스의 베크메써는 반대로 좀 과하게 희극적이고 비열하게 보이려 노력한 탓인지, 그렇게까지 과잉된 표현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의심을 품게 만듭니다. 베크메써는 작곡가의 의도가 반영된 철저한 악역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일말의 인간적 품위 내지는 연민의 시선을 비춰줄 필요가 있는 등장인물이라 생각하는 저로써는 베크메써에 대한 카라얀과 에반스의 해석에 의문부호를 병기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기왕 멀쩡한 무덤 파헤치다시피 흠을 잡아낸 김에 좀 더 트집을 잡자면, 이 음반은 카라얀의 지나친 완벽으로의 추구가 되려 과유불급의 역효과를 발생시키는 게 문제입니다. 작품 자체가 비록 바그너가 작곡하긴 했어도 엄연히 희곡 -오페라 부파?- 의 계보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칼같이 정확한 박자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앙상블을 추구한다 해도 필요한 순간에는 약간의 흐트러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카라얀은 그런 흐트러짐의 여유를 용납하지 못하였고, 덕분에 이 음반은 대놓고 스튜디오 녹음이란 것이 표가 날 정도의 인공미를 지니게 되고 말았습니다. 2막 마지막은 마치 바흐의 칸타타라도 듣고 있는게 아닐까 할 정도로 점잖고 균형잡힌(?) 난장판이고, 3막 후반부의 축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인한 시끌벅적함이 결여된 관영 축제를 연상케할 만큼 질서정연합니다. 일전에 소개드린 적이 있는 동 지휘자의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 "마이스터징거" 와 비교해보면 이러한 과유불급의 인공미는 확연히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뜯어발기다시피 흠을 잡아봤습니다만, 그래도 이 음반의 객관적인 완벽성 앞에서는 그 흠들은 그저 플라스틱 표면에 난 실낱같은 흠집 자국에 불과하다고 해야겠지요. "마이스터징거"를 들어보려고 하신다면 이 음반을 일단 꼭 한번 '직접' 들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듣고 나서 제가 내린 평가에 수긍하신다면 계속 사랑해주시면 되고, 카라얀이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간에 싫고 그가 자아내는 인공미가 가증스러운 위선으로만 느껴지신다면 안 들으시면 그만입니다. 마치 선호하는 "마이스터징거" 연주 스타일을 규정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고나 할까요. 확실한 것은, 이 음반만큼 객관적으로 완성된 연주를 찾아보기는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