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그렇지만은 않아도 어쨌던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확실히 비주류 중견 지휘자임에는 분명한 인발. 베를린 필이니 빈 필이니 하는 호화찬란하고 뻑적지근한 이름값들을 자랑하는 일류 연주단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인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거기에다 손쉽게 이목을 끌 수 있는 자극성과 강렬함보다는 일견 수수하게 들리는 견실함과 명료함을 택한 해석. 소위 말하는 인기있는 말러 연주들 사이에 인발의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은 이상의 이유들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7번 녹음에서만큼은 인발의 해석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절묘호사"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낳았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동곡에 있어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아바도와 시카고 교향악단의 84년도 동곡 구 녹음과 비교해 보면, 비록 아바도가 만들어낸 것과 같은 윤기넘치고 매혹적인 음색과 악상 표현은 없지만, 인발은 그 대신 '파삭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명료하게 보여주는 이지적인 냉철함으로 감상자의 귀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이처럼 말러라고 해서 꼭 반쯤 정신질환에 걸린 것처럼 들려야만 할 이유는 전혀 없음을 훌륭하게 웅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발의 말러는 가치를 지닌다. 이지적인 냉철함, 그것은 번스타인의 자기도취, 텐슈테트의 처절함, 아바도의 세련된 낭만성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무게감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몽환적인 밤의 세계를 담고 있는 악상들을 이토록 무덤덤하고 절제된 시각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그려낼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이 음반은 숱한 말러 녹음들 중에서도 그 나름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ps: "이지적인 냉철함"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불레즈의 말러 해석과 유사하다고 생각치 않았으면 한다. 실제로 들어보면 알겠지만 불레즈와 인발은 상당히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불레즈의 작곡가로서의 자세에 바탕을 둔 이론과 분석에 일차적으로 의지하는 표현과는 달리, 인발은 지휘자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직감에 바탕하여 그 나름의 "이지적인 냉철함"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표현력이 부족한 탓으로 확연히 그 차이를 묘사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Posted by A.J.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