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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라는 장르는 엄청나게 넓다. 하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부류는 상대적으로 협소한 편이다. 잘 생각해보면, 클래식이라고 할 때 우리의 뇌리 속에 먼저 떠오르는 작곡가들은 대체로 B, M, W로 시작되는 성을 지닌 게르만계 음악가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반 농담삼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고전 및 낭만주의 음악 세계를 이렇게 호칭했다. "BMW".

그러나 아무리 맛있고 풍성한 식단도 계속 먹고 있다보면 질리는 법이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기에, "BMW"만 계속 접하고 있으면 저절로 뭔가 다른게 듣고 싶어진다. 대개는 장르 자체를 바꿔버려서 록이나 재즈 등으로 잠시 외도를 하지만, 개인적으로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BMW"가 아닌 다른 지역이나 다른 시기의 클래식을 이것저것 도전해보곤 한다.

마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은 그러한 새로운 시도의 결과물들 가운데 성공적인 축에 속한다. 지휘자와 악단은 프랑스의 고유한 음악적 배경을 바탕으로, "BMW"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프랑스 고전 음악가들의 풍요로운 세계를 들려주고 있다. 세련미와 다채로움을 겸비한 음색 그리고 축제적인 뉘앙스의 향연으로 축약할 수 있을 이들의 음악 세계에는, "BMW"와 게르만계 악단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빛과 색채감으로 이루어진 인상깊은 매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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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모, "상상의 교향곡" - 마크 민코프스키, "루브르의 음악가들"(2005): 지금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분류에 따르면 장 필립 라모는 '고음악', 즉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이다.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 음악가인 그는 후세에는 주로 오페라 작품들로 기억되고 있다. 이 음반은 "상상의 교향곡"이라는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실제로 라모가 쓴 작품은 아니고 민코프스키가 라모의 오페라 관현악들 중 일부분들을 가져와서 묶은 후 그와 같은 제목을 붙인 것이다. 바로크기 그랑 오페라 특유의 웅장함과 프랑스 음악 고유의 섬세함이, 악단의 세련된 기능미와 '에스프리'에 의해 잘 묘사되고 있다. 듣고 나면 개운한 느낌을 주는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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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제, "카르멘 모음곡 &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 마크 민코프스키, "루브르의 음악가들"(2008):
    민코프스키가 소속사를 Naive로 옮긴 후 처음으로 내놓은 음반. 프랑스 고전 음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그의 새로운 도전은 바로 비제였다. 잘 알려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과 알퐁스 도데의 연극 "아를르의 여인"을 위한 반주곡에 포함된 여러 관현악곡들을 수록한 이 음반은, 연주 뿐만 아니라 고흐와 고갱 등의 화가들의 그림과 도데의 "아를르의 여인" 원작 등으로 풍성하게 꾸며진 내지로 애호가의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 19세기의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 비제의 강렬한 인상주의 화파 풍의 색채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연주다. 언젠가는 꼭 남프랑스를 가보고 싶어지게 만든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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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4 23:42 2008/07/0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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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루 위에 올려진 쇳덩이마냥 무지막지하게 시험당하고 있는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즈음, 바흐의 오르간 작품들은 온갖 부정적인 감정에 시달리고 있는 나에게 기묘한 위안을 제공한다. 어차피 나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고통스러운 감정들도, 이 세계라는 거대한 범주 내에서는 실로 보잘것없이 작고 부질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연의 섭리(신의 섭리라고는 절대로 말하지 않겠다)가 보여주는 극히 작음에서 헤아릴 수 없이 큼에 이르는 그 질서정연하고도 가차없는 움직임 앞에서 내 존재란 아무리 크게 잡아도 기계장치의 기어들 사이에 끼여있는 잡티나 다름없지 않은가. 기어가 돌아가면서 잡티를 무자비하게 으깬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그 잡티가 제 딴에는 제아무리 큰 고통을 느끼고 그것을 온몸으로 외친다 한들 세계라는 이름의 기계는 전혀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치밀하기 그지 없는 수학적인 연산의 과정을 거쳐 탄생한, 오르간의 음향 속에 새겨지는 저 세계의 모습을 '듣고' 있자면 절로 겸허함을 갖추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리고 그 겸허함을 통해, 때로는 무자비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나날들을 묵묵히 수긍할 수 있는 마음의 평온을 찾게 된다. 자연법칙의 기본 중 기본인 수학을 통해 음악이라는 형태의 또 다른 세계를 창조한 위대한 음악가, 바흐에게 경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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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 오르간 리사이틀 - 칼 리히터, 제네바 빅토리아 홀 오르간(1954) : 바흐를 경배하는데 온 일생을 다 바친 지휘자이자 연주자 칼 리히터는 오르간 연주에 있어서도 일류의 기량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남긴 바흐 오르간 작품 연주 녹음은 두 종이 있는데, 이것은 데카에서 녹음된 것으로 현대 오르간을 사용하여 매우 품격있고 웅혼한 연주를 들려준다. 녹음 년도가 년도인 만큼 음질의 측면에서는 아무래도 아쉬운 점이 많지만, 바흐 오르간 작품은 일단 뭔가 숭고하고 웅장한 - 종교적인? - 느낌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한번 쯤은 들어봐야 할 음반이다. 문제는 구하기가 이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 위 표지의 본사반은 폐반된지 이미 오래이고, 일본 유니버셜에서 LP 발매 당시와 같은 구성으로 내놓은 라이센스반은 본사반과는 달리 뒷부분 3트랙이 잘려나갔다는 문제가 찝찝하다. 모 싸이트를 통해 mp3로나마 소장하고 있지만......(이 포스팅에 삽입된 BWV.565가 바로 그 mp3이다) 어찌되든 간에 현재로서는 구하고 싶은 음반 1순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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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 오르간 작품집 - 칼 리히터, 얘거스보르크, 프라이부르크 오르간 (1964, 1967, 1969, 1980) : 칼 리히터의 바흐 오르간 작품 연주를 듣고 싶다면 현재로서는 유일한 선택이 될 듯 하다. DG 오리지널스로 재출반되면서 음질의 향상은 물론 기존 LP 시절 여러 장으로 분산되어 있던 각 음원들을 단 3장의 CD에 눌러담다시피 했으니...... 일단 이 음반만 사면 DG와 Archiv 레이블로 존재하던 리히터의 바흐 오르간 작품 연주는 다 들어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덕분에, 위의 데카 음반은 아마도 절대로 본사 재출반이 이루어지지 않을 듯 하다.(데카와 DG는 같은 유니버셜계 음반사니까.... 같은 연주자의 같은 레퍼토리를 또 내줄 리가 없을 것 같다) 연주는 데카 반과 비교해볼 때 전체적으로 좀 더 빠른 템포에 기계적인 음향을 들려주고 있는데, 듣고 있다보면 때때로 MIDI 사운드가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종교적인' 바흐보다 '수학적인' 바흐에 더 초점을 맞춘 듯한 느낌인데, 바흐가 실제로는 종교인으로서의 신념 때문이라기보다는 그저 먹고 살기 위해 교회 음악을 많이 작곡했음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해석이 훨씬 설득력있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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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27 23:40 2007/10/27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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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으로 오랜만에 음반 감상문을 적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공부다 운동이다 해서 이래저래 바빴습니다만 그래도 음반 사고 음악 듣는 일은 어째어째 계속해왔습니다. 듣는 건 즐거워도 감상문 쓰는 것은 이래저래 두뇌와 양손이 고달픈 일이라 무의식적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결과적으로는 블로그를 2개월 넘게 방치해두는 사태를 초래하고야 만 셈이 되었군요. 음반들이 "들었으면 좋은지 나쁜지 뭔가 반응이 있어야지" 라는 듯한 시선을 던지는 바람에 자꾸 뒷통수가 따가운 탓에, 일단 그 음반들 중에서도 상당히 고참급(?)에 속하는 가디너 경의 "코지 판 투테" 의 감상을 써보고자 합니다. 사실 이 음반은 작품 자체에 끌렸다기보다는 기왕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이한 김에 모차르트의 4대 걸작 오페라는 한번 다 들어보자라는 생각으로 구매하게 된 물건입니다.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그리고 이 "코지 판 투테"와 "마술 피리"를 가리켜 일반적으로 모차르트의 4대 걸작 오페라라고 하는데, 그 중에서도 "코지"는 통상적인 지명도가 여타 작품들보다 많이 떨어지는 듯한 느낌입니다. 어찌보면 그보다 전에 작곡된 "후궁으로부터의 탈출"에조차도 인지도의 측면에서 밀리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죠. 작곡된 계기가 "피가로의 결혼" 중에 등장하는 "여자란 다 그래('코지 판 투테')"라는 가사를 듣고 뭔가 느낀 바가 있으셨던 요제프 황제가, 모차르트와 대본작가 다 폰테에게 그 가사를 모티브로 하는 오페라를 써보라고 명령했기 때문이라는데, 그래서 그런지 작품의 내용 자체는 사실 그저 그런 수준입니다. 여인들의 정조를 남정네들이 시험해본다, 라는, 요즘 같으면 페미니스트들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날 그런 소재에다가 일일연속극을 방불케하는 치정극의 요소를 합치고 거기다 코미디를 조금 첨가한 게 바로 "코지 판 투테"의 줄거리인 것이죠.

하지만 줄거리의 지리멸렬함이라는 단점은 높은 음악적 완성도가 발하는 매력이라는 장점 앞에 완벽하게 가려집니다. 모차르트가 죽기 1년 전 쯤, 그러니까 테크닉의 측면에서나 경륜의 측면에서나 모두 완숙의 경지에 달해있는 시점에서 쓰여진 작품이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음악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상세하게 표현하고 있는 점과, 중창의 앙상블에서 느껴지는 음악적 성취는 "코지 판 투테"를 당당한 걸작 오페라의 반열에 올려놓기에 충분한 요인입니다. 물론 이런 장점들을 한 두번 들어서 바로 깨닫기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이번에야말로 제대로 들어보겠다며 몇번이나 다짐을 하고 정좌하여 음악을 듣다가 졸았던 일이 몇번이었던가요. 하지만 여러번 듣다가 졸다가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 순간 이 작품만이 보여줄 수 있는 기묘한 매력에 흠뻑 빠져든 저 자신을 발견하게 되더군요. 칼 뵘이 어째서 "코지 판 투테"를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였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음반 자체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일단 가디너가 지휘를 맡고 잉글리쉬 바로크 솔로이스츠가 연주하는 만큼 당연히 연주 방식은 원전연주입니다. 사실 그 많은 "코지" 음반들 중에 굳이 이걸 고르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음반을 구매할 당시 제가 가디너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푹 빠져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지금은 꼭 그렇게만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그토록 훌륭하게 베토벤 교향곡을 원전 연주방식으로 지휘한 가디너'의 음악적 역량을 신뢰하고 있었기에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이었지요. 음반을 구매하고 들어본 지 꽤 오랜 세월이 흐른 지금 평가해보면, 가디너에 대한 저의 신뢰는 틀리지 않은 것 같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전집에 대해서는 이제 좀 많이 삐딱한 시선을 지니게 되었지만, 아직 이 "코지 판 투테"에는 그런 시선을 가질 생각이 그다지 없습니다. 경쾌한 속도감과 명료한 음색이라는 원전 연주의 강점이 "코지" 자체가 지니고 있는 앙상블의 매력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주는 한편, 1992년 이탈리아 페라라에서의 실황이라는 연주 당시의 특성 덕분에 지나치게 학구적으로 매달리면 나타나게 되는 딱딱함 내지는 건조함도 많이 희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가수들 역시 좋은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코지 판 투테"가 엄연한 오페라 부파인 이상, 작품 전체에 걸쳐서 희극적이고 낙천적인 분위기는 필수불가결합니다. 가디너가 선택한 가수들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그런 분위기를 잘 표현해내는 한편, "코지"만이 지닌 앙상블의 매력을 낭랑하게 들려주는 호연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여한 가수 모두가 성악 테크닉의 측면에서나 인물의 심리 묘사의 측면에서나 딱히 어디 흠 잡을데가 없이 훌륭한 가창을 들려줍니다. 그래도 굳이 아쉬운 부분을 파헤치다시피 집어낸다면, 도라벨라와 피오르딜리지 자매 두 사람이 지니고 있는 각자만의 고유한 성격이 주는 차이감이 좀 무덤덤하게 처리된 듯하다는 것을 지적해야 하겠습니다. 자매가 함께 중창을 할 때는 더없이 완벽하지만, 각자 따로 따로 아리아를 부를 때는 가끔씩은 누가 도라벨라이고 누가 피오르딜리지인지 잘 구분이 안 갈 때가 있더군요. 적어도 제가 마음 속으로 지니고 있던 자매 각자의 이미지에 비추어볼 때는 그렇더라는 얘기입니다.

여하튼 가디너의 "코지 판 투테"에 대해서는 작품 자체가 지닌 매력을 잘 살려주고 있는 좋은 음반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낭랑하게 울려퍼지는 성악과 관현악의 앙상블이 가져다주는 "코지"만의 기묘한 매력에 흠뻑 빠져들고 싶으시다면 꼭 들어보셔야 할 음반입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실황을 녹음하고 DDD로 리마스터링한 물건이라 그런지는 몰라도 사양이 평범한 수준보다 좀 아래인 제 미니 콤포넌트에서는 소리가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작게 들려오는 감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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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10/11 01:01 2006/10/11 01:01


베토벤 교향곡을 정격연주한다는 것은 결과를 장담하기가 무척 힘이 드는, 일종의 도박이라고 생각합니다. 음악사적으로 베토벤은 고전주의와 낭만주의의 두 시대 사이에 걸쳐져 있는 과도기적 존재입니다. 그는 빈 고전주의의 전통을 계승하는 동시에, 19세기 초반 유럽의 혁명적 기운을 바탕으로 낭만주의의 기초를 확립했습니다. 때문에 바로크 시대 작곡가들이나 모차르트 등의 경우와는 달리, 베토벤에게 있어서 정격연주는 오히려 작품이 지니고 있는 낭만주의적 특성을 죽여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로저 노링턴, 가디너, 아르농쿠르 등의 여러 지휘자들의 노력 덕분에, 현재 베토벤 교향곡의 정격연주는 주목할만한 성과를 거두었고 고전음악 연주 스타일의 주류 대열에 합류하는데도 성공하였습니다. 그 중에도 가장 대중적인 지지와 인기를 얻은 것이 바로 가디너의 전집입니다. 1990년 가디너가 설립한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베토벤에 무척 잘 어울리는 오케스트라 이름이라고 생각합니다)"는 1991년부터 1994년까지 베토벤의 교향곡 전곡을 가디너의 지휘로 정격연주 스타일로 연주했는데, 이것이 당시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입니다.

가디너와 "혁명과 낭만의 오케스트라"가 무슨 이상을 어떻게 추구했는지는, 이 전집의 초판에 들어있는 북클릿에서의 가디너 본인의 설명 및 인터뷰 CD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지금 판매되고 있는 동 전집에는 둘 다 들어있지 않습니다). 가디너가 추구한 것은 정격연주의 정신에 걸맞게, 베토벤 생존 당시에 작곡가가 생각했던 표현과 기법을, 그 당시의 악기와 오케스트라 편성 및 연주법의 재현을 통해 완전하게 재구성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전까지 베토벤 교향곡은 거의 전적으로 낭만주의적 해석에 따라 연주되어 왔고, 때문에 필요 이상으로 무게가 잡히고 지휘자 및 연주자들의 자의로 변형된 점이 많으며, 그렇기에 음악학자들의 최신 연구가 반영된 정격 연주가 의미를 가질 수 있다고 가디너는 본 것이죠.

결국 가디너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베토벤 교향곡의 정격연주가 가능하고, 때로는 그 자신이 주장한 것과 같이 그 전까지 행해졌던 현대 악기와 근대적 오케스트라의 낭만주의적 해석에 따른 연주보다 더 훌륭한 효과를 발생시킬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해내었습니다. 실제로 들어보면, 우리가 이전에 접해왔던 카라얀이나 푸르트벵글러, 칼 뵘 등의 베토벤 교향곡 연주와는 확연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웅장함 내지는 스펙터클한 맛은 상대적으로 반감되었지만, 그 대신 좀 더 명징하고 활기차졌으며, 역동감이 있어진 것이지요.

이러한 효과는 특히 1, 2, 8, 9번 교향곡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고전주의적 색체가 두드러지는 1, 2, 8번은 가디너가 추구했던 베토벤 교향곡 정격연주의 진면목을 잘 보여줍니다. 그리고 엄청난 속도감으로 인해 축제적 열기가 부가된 9번은 이 음반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하는 불꽃놀이와도 같은 존재입니다. 물론 이전 세대 지휘자들의 "합창"에 익숙해져 있다면 가디너가 설정한 템포가 경박스러울정도로 빠르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을 경박하다기보다는 종악장의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달리면서" 느끼게 되는 해방의 쾌감으로 받아들이고 싶습니다.

3, 5, 6번은 무난합니다. 셋 다 비교적 빠른 템포로 명징하게 연주되고 있지만, 그 효과는 미미합니다. 가디너가 강조했던 베토벤 정격연주의 의의는 이 세 곡에서는 그다지 잘 나타나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경쾌함과 서정성이 균형적으로 겸비된 3번은 좀 더 점수를 받을 수 있지만, 역동감과 스펙터클함이 왠지 모자란 듯한 5번과, "전원"이라는 부제에 비추어볼 때 여유로움이 결여된 6번은 다른 지휘자들의 연주들과 비교해볼 때 자신의 존재 의의를 특출나게 부각시킬 수 있는 매력이 "2%" 부족합니다.

4번과 7번은 이 전집에서 가장 뒤떨어진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두 곡 모두, 학문적 성과의 반영이 정격연주에 미치는 가장 큰 해악인 딱딱함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습니다. 활기 내지는 생기도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둘 다 베토벤의 교향곡들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밝고 유머러스한 요소가 많음을 생각해볼 때, 가디너는 지나치게 딱딱한 태도로 악보에만 매달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동 작품들을 지휘할 때 나타났던 놀라운 효과들을 상기해보면 가디너의 단점이 역력히 드러납니다. 졸연이라 평가받을 정도는 아니지만 아쉬움이 많이 생기는 부분입니다.

종합해보자면 음악사적 의의도 있고 전체적으로 완성도 높은 준수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이나, 정격연주가 지니는 문제점들이 일부 노출되어 일말의 아쉬움을 안겨준다고 해야 하겠습니다. 베토벤 교향곡의 정격연주들 중에서는 일단 가장 추천할만 한 전집입니다. 특히 베토벤 교향곡의 진가가 웅장함이나 비장한 드라마가 아니라 역동감과 패기에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꼭" 들어보실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내 음악 쇼핑몰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신품을 구입하시기보다는 중고로 구매하시거나 영국 아마존 등의 외국 온라인 쇼핑몰에 주문하시는 편이 경제적으로 "월등하게" 이익이라는 점을 꼭 알려드리고 싶습니다.(가격을 비교해보시면 수입상들의 횡포를 절실히 느낄 수 있으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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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8/19 21:12 2006/08/19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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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언제쯤?

- A.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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