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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이 아닌 이상 "마이스터징거"를 완전히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바그너의 이 악극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한국인에게 있어서 "아리랑"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독일인' 또는 '독일 민족'이라는 근대적 개념 및 범주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다른 범주와는 동질성의 측면에서 확연한 구분을 짓는 기준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

물론 단순히 중세 독일 지방의 자유도시에서 벌어지는 축제와 사랑의 대소동이라는 표면상의 모습으로만 "마이스터징거"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곳곳에서 보여지는 역사적, 사회적 변화 과정들의 암시 내지는 상징들을 생각하면, 결코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단언하건데 이 작품은 "독일 민족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붙여줘도 아무 문제가 안될 것이다.

그래서 "마이스터징거"는 어렵다. 길이 자체도 길거니와, 대체 이게 왜 그렇게 우스운지 또 감동적인지 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한국 원로 바그네리안이 쓴 바이로이트 축제 감상기에서, 이 작품을 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독일인들은 모두 자지러지는데 자기 혼자만 어색한 미소만 띄우며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더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마이스터징거"를 들을 때의 따분함과 힘겨움이 나의 공력과 경험이 일천한데서 오는 증상이라고 자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비오 바르비조가 지휘한 1974년도 바이로이트 실황 "마이스터징거"는 그동안 바이로이트 실황의 "마이스터징거" 음반 중에서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왔는데, 지금까지 쓴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독일 민족', '독일 정신' 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고찰을 바탕에 무겁게 드리우는 일 없이, 순수하게 작품의 내용 그 자체에 맞추어 사랑의 우여곡절과 축제의 흥겨움 만을 전면에 도출시켰기 때문에, 굳이 독일인이 아니어도 이 연주가 전달하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실황 음반은 순수하게 연주 그 자체로만 따지고 보면 범작 이상이 되기 힘들다. 성악가들의 기량만을 평가한다면 아마도 모든 바그너 음반들을 모아놓고 순위를 매겼을 때 상당히 하위권에 가게 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라얀을 필두로 하는 게르만계 지휘자들의 방식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따스함과 자연스러움을 지닌 바르비조의 해석과 그에 맞춘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성악 부분의 단점을 메꾸면서 동시에 작품의 배후에 있는 각종의 진지하고 복잡한 배경들을 신경쓰이지 않게끔 희석 또는 융해시킴으로써 사랑과 축제라는 표면 상의 이야기만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 음반에 관한 모 인터넷 클래식 동호회 사이트 10자평에서  "한번에 다 들을 수 있었던 마이스터징거", "흡입력이 강했다", "상당히 즐겁게 들었다"라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는 특출나게 집중하거나 강조되는 부분이 거의 없어서 되려 아쉬웠다. 바르비조의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즉 쾌적한 오케스트라 지휘는 "마이스터징거"가 진지하게 해석될 때 광채를 발하는 일부의 미덕들까지도 상당히 흐릿하게 만들어버린게 아닐까. 대미를 장식하는 작스의 "신성 로마 제국 예술 찬가"마저도 무심하게 흘러가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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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9/23 11:45 2008/09/23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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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뭔가 변화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감지된다. 우선 그 허접했던 인터넷 홈페이지도 세련되게 바뀌었고, 거기다 사상 최초로 인터넷 생방송으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초연 실황을 중계까지 해주는 등, 기존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뚜렷이 느껴진다.

"명가수" 생중계 홈페이지의 정보에 따르면 7월 27일 오후 3시 45분(독일 시간)부터 시작되는 초연 실황을 전 세계의 바그네리안들에게 대역폭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화질과 128Kbps의 음질로 제공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이 생중계의 내용에는 막간에 무대 뒤의 상황을 실황으로 중계하고, 연출을 맡은 바그너 가의 차세대 기수 카타리나 바그너와의 온라인 대담도 제공되는 등, 바그네리안이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부가가치가 붙어있다.

물론 이 포스팅을 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다 물 건너간 얘기지만, 그래도 8월 2일(독일 시간)까지는 이미 온라인 방송이 나간 모든 영상을 계속해서 서비스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물론 공짜는 아니다. 지금까지 주절거린 모든 꿈같은 이야기들을 실제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49유로를 지불해야만 한다.

핫핫하...... 현 환율로 7만 8천원 선이다. ㅠ_ㅠ 난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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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8/01 00:01 2008/08/01 00:01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음반은 사실 "뀡 대신 닭"의 심정으로 구매했던 물건이었습니다. 재작년에 한참 바그너에 빠져 있을 때, 스튜디오 녹음반으로 하나, 그리고 바이로이트 실황반으로 하나, 이렇게 한 작품 당 두 개씩의 음반을 구매하자는 계획을 세웠었죠. 좋은 음질과 정확한 연주라는 스튜디오 녹음반의 장점과, 생생한 현장감과 바이로이트 사운드의 효과라는 바이로이트 실황반의 장점을 모두 섭렵해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의 경우 처음에는 스튜디오 녹음반으로는 카라얀의 1970년 녹음(EMI)을, 그리고 바이로이트 실황반으로는 바르비조의 1974년 실황(PHILIPS)을 예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르비조 반은 어딜 가나 "품절"이더군요.ㅜ_ㅜ 그래서 그 대신 이른바 "역사적인 연주"라는 카라얀의 1951년도 실황(NAXOS)을 사게 된 것이었습니다.

1951년이라는 녹음 년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그리고 이 음반을 권하는 분들의 사전 경고 그대로, 음질은 저명한 복각 전문가 마크 오버쏜이 손댔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뒤떨어집니다. 특히 총주 부분이나 합창단과 가수들이 일제히 뒤섞이는 부분 등은 제대로 음을 판별하기가 힘들 정도로 뭉개지더군요. 때문에 바르비조 반을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 동안 이 음반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역사적인 명연" 이라 해도 음질이 나쁘면 멀리할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하면서 말이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같이 구매한 스튜디오 녹음반 역시 덩달아 손이 잘 안 가져서, 결국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라는 작품 그 자체마저도 여타의 바그너 작품들에 비해 왠지 정이 안 가게 되더군요.

오늘 아침, 갑자기 '간만에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럴 때마다 카라얀의 1970년도 스튜디오 녹음반을 선택했습니다만, 오늘은 다른 것도 좀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책장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로 처박혀있던 이 녀석을 꺼내들었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왠일인지 예전에 들었을 때와는 전혀 색다른 느낌과 감동이 몰려오더군요. 비록 음질은 다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 그 자체는 분명 "역사적인 명연"이라는 평가에 걸맞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이 음반을 구매했을 때와는 달리 제가 1951년도 바이로이트 축제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좀 더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51년의 바이로이트 축제는 단순히 제 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처음으로 열린다는 외형을 뛰어넘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그너의 음악이 나치의 선전 도구로 악용되었다는 제 3제국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독일 음악계의 역사적 사명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나치에게 악용당한 독일 예술을 상징하다시피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더더욱이 그와 같은 비극적이고 불유쾌한 전과를 청산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음반에 담겨 있는 공연은 바로 그러한 청산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이 공연을 통해 나치의 선전도구가 아니라 순수한 음악 예술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통해 모든 인류가 화합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바그너 유일의 희극이라는 본모습을 되찾은 것이지요. 녹음된 공연 전체에 감도는 따스하고 활기찬 분위기의 음악과, 마음껏 웃음을 터뜨리고 기뻐하는 관객들의 왁자지껄한 반응은 분명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제 3 제국의 일원으로써 나치에게 협럭하거나 그들에게 종속된 인생을 살아 왔던, 카라얀과 슈바르츠코프를 비롯한 모든 음악인들과 관객들에게 있어서, 이 공연은 과거에 대한 속죄와 새출발을 위한 다짐을 행하는 한바탕의 흥겨운 살풀이였음이 분명합니다.

음악적 우수성이나 음질이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이 음반은 상당히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잣대만으로는 미처 잴 수 없는 것들을 감안했을 때, 이 음반은 분명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의 유일무이한 "역사적인 명연" 입니다. 예술이 예술로서의 본모습을 되찾고, 한 민족 집단이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내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광경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질이 나쁘다는 이유 만으로 이 음반을 멀리했던 저의 좁은 소견머리가 실로 부끄럽고, 뒤늦게나마 그 진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게 기쁩니다.

ps: 그렇다고 해도 이 음반이 바그너에 이제 겨우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이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들어보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우선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요컨데, 왠만큼 바그너에 대한 공력이 쌓인 중급자 이상을 위한 음반이라고 해야 할런지요.......(앗, 쓰고 보니 마치 제가 중급자 이상이다! 라고 뻐기는 듯한 뉘앙스가 되고 말았군요. 그렇게 잘난 척하는 의미는 아닙니다...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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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2/06 19:24 2006/02/06 19:24

["우리~만남은~우연이~아니야~"]

오늘 팀 버튼 감독의 "유령 신부"를 보러 용산 CGV에 갔었습니다. 기대한 것에 비하면 영화는 좀 별로더군요. 영화를 본 후에 시간을 좀 때울까 해서 들렀던 근처 신나라 레코드 점에...... 그토록 찾아 헤맸던 볼프강 자발리쉬 지휘의 1962년도 바이로이트 실황 "탄호이저"가 있었던 겁니다! 정말이지 그건 하늘의 계시가 있었던 만남이었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왠지 오늘따라 음반점에 가보고 싶더라니만은.......^^;

이 음반은 예전에 올렸던 100문 100답에서도 "당장 듣고 싶은 음악" 질문에 답으로서 써두었던, 그야말로 제게 있어서 구매 희망 0순위의 음반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미 단종되었다는 업계의 사정으로 인해, 온라인 음악 쇼핑몰들에서는 이 음반을 구할래야 구할 수가 없었었지요.
오프라인 매장들도 이곳저곳 들를 때마다 이 음반에 대해 문의를 해보았었지만, 풍x당 같은 유명한 곳에서도 학교 구내 매점같은 허접한 곳에서도 이 음반의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구하고 싶었지만 잠정적으로 포기하다시피 한 음반이었는데, 정말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들어보게 되었군요.

우선 자발리쉬의 지휘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제가 처음으로 산 바그너 전곡반인 89년도 "반지"에서도 느꼈었던 그 유장함이 기본적으로 느껴집니다. 동시에 40여년 전의 젊은 시절의 자발리쉬가 지니고 있었던 활력과 열정이 가미되어, 듣다 보면 매우 강렬하고 거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더군요. 물론 '힘으로 밀어붙이는' 지휘의 대명사, 솔티 경의 1971년도 스튜디오 녹음 탄호이저에 비하면 좀 더 부드럽습니다만, 사실 탄호이저의 내용을 생각해보더라도 자발리쉬의 지휘가 그 밖의 점에 있어서 솔티에 비해 밀릴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됩니다.

가수진들은 그야말로 1960년대 바이로이트 극장의 황금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호화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탄호이저 역에 볼프강 빈트가센, 영주 헤르만 역에 요제프 그라인들, 엘리자베스 역에 안야 실랴, 베누스 역에 바이로이트 최초의 흑인 출연진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레이스 범브리....... 이들 모두가 그 멋진 노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특히 볼프강 빈트가센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솔티 반의 르네 콜로보다는 좀 더 완숙하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특히 3막의 "로마 이야기" 막판에, 교황의 저주가 내리는 장면에서 경악한 듯이 굉음을 내는 콜로와는 달리, 절망하는 듯이 목소리가 더욱 꺼져들어갔다가 이후에 베누스베르크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때 비로소 고음으로 외쳐대는 점에서, 빈트가센의 인물 해석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솔티 반과 비교해가면서 들으니 여러 모로 재미있는 점이 많더군요. 두 음반의 가장 큰 차이는 전의 작품 리뷰에서도 언급한 판본 문제인데, 솔티 반이 파리 판본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이 음반은 이른바 혼합 혹은 절충 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1막 서곡에서 바카날을 등장시키는 데까지는 파리 판본을 따르나, 그 이후에는 대체로 개정된 드레스덴 판본을 따르는 식입니다. 파리 판본에서는 삭제되거나 변형된 부분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솔티 반에 익숙해진 저로서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그리고 또 그리던 음반이라 무척 기대하며 들었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매우 기쁩니다. 한 동안 저의 애청 음반의 위치를 점하게 될 듯 하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이걸 집어가버린 바람에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든 음반 더욱 구하게 어렵게 되어버린 다른 바그너 애호가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이건 명백한 염장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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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5/11/06 21:58 2005/11/0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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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건 언제쯤?

- A.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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