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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난 직후의 휴식기를 이용해서, 사놓은 지 한 달이 넘도록 감상하지 못했던 바렌보임과 하리 쿠퍼의 바이로이트 (유사)실황 "신들의 황혼" DVD를 보았습니다. 원래는 학교 내 영상동아리의 감상실을 빌려서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날씨도 춥고 무엇보다도 그 넓은 대형 감상실의 와이드 스크린 앞에서 4시간 넘게 혼자 우두커니 앉아 오페라 DVD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면 뭐라고 말할지가 두려워 그냥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슬픈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영상물을 끝까지 보고 난 직후에 느낀 것은 일단은 "끝났구나"라는, "반지" 전 싸이클을 섭렵하고 나면 언제나 느끼는 묘한 안도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내용의 길이가 14시간에 육박하는 초장편 악극이 되다 보니, 감상 도중에도 이따금씩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는 일이 있게 되지요. 요즘의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들은 바쁘기 그지없는 현대인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되도록 짧은 시간 내에 최대의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느라 고심하는데, 바그너 영감께선 19세기의 사람이신지라 그런건 전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21세기의 감상자들만 반죽음 내지는 초죽음이 되는 거지요. 오죽하면 "바그너의 작품이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상연되는 탓에 피곤의 극치에 이른 감상자가 비판적 사고의 능력을 잃기 때문이다."라는 블랙 유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신들의 황혼" 3막의 막이 떨어지는 순간이 되면 일단은 안도의 한숨부터 쉬고 보는 겁니다. 용케도 버텼구나, 라는 심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이런 생고생을 해가면서까지 "반지"를 보는 이유가 뭐냐, 라고 물으신다면 사실 명쾌하게 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흡연자에게 몸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왜 담배를 피우는가, 하고 질문하는 상황과 유사하달까요. 굳이 설명을 해보려는 헛된 노력을 해보자면, 적어도 저의 입장에서는 한 세계의 멸망이라는 거대하고 심각한 주제가 음악과 연극의 결합이라는 방법을 통해 구현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커다란 규모의 카타르시스의 정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그런 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들의 황혼" 마지막 순간의 대 클라이맥스가 주는 카타르시스의 정화 효과는 한번 경험하게 되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최종적인 파국"으로 인해 일순간에 사라져가는 세계를 지켜보며 느끼는 감정의 강렬함이 워낙 큰 탓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물에서 연출가는 그처럼 큰 감정의 분출을 일으키는 결말부의 처리에 있어서 "파국"을 통한 절대적인 해결을 명쾌하게 보여주지 않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장면을 구성함으로써 되려 감상자로 하여금 의문에 빠지게 만듭니다. 거대한 불길이 신들의 전당을 덮치는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보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알베리히, 그리고 그런 알베리히의 앞을 한 쌍의 소년 소녀가 조그마한 손전등으로 자신들의 발 앞을 비추면서 지나간 직후 막이 떨어집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지, 한 번의 감상 만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연출자 하리 쿠퍼는 과연 무슨 의도로 그런 결말을 보여주었던 것일까요? 이와 같은 당혹스러운 결말 때문에, 뵘이나 자발리쉬 등의 "반지" 전 싸이클을 들은 직후 느꼈던 카타르시스의 정화를 통한 만족감은 이번에는 솔직히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반지"의 세계가 결정적인 파국을 맞아 멸망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 때문에 바렌보임과 쿠퍼의 "반지" 바이로이트 (유사)실황 영상물들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 더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럴 여유는 당분간 전혀 없을 것 같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대충 이 정도로 바렌보임과 쿠퍼의 바이로이트 (유사) 실황 "신들의 황혼" 을 본 소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결말이 준 불만족스러움과는 별개로 연주 수준과 가수들의 연기는 정말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강병운 교수님의 하겐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저 음흉한 흉계를 꾸미는 야수같은 악당이 아니라, 아버지 알베리히 때문에 억지로 떠밀린 숙명에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연료삼아 야망의 불길을 활활 태우는 용맹과 지략을 고루 갖춘 전사라는, 제가 언제나 상상해오고 있던 "반지"의 하겐 이미지에 매우 근접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80년대 "영웅본색" 등의 홍콩 느와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덕도 좀 보신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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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12/08 16:07 2006/12/0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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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타먼트의 1955년 "반지" 바이로이트 실황물 그 두 번째, "발퀴레"입니다. 출시 자체는 올해 중순 쯤에 이루어졌지만 국내 수입은 얼마 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그 동안 영국 아마존에 주문 넣을까 말까를 늘 고민해왔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해야할 것 같군요. 왠만하면 박스물은 영국 아마존에서 사는 편이 더 싸게 먹히는 경우가 태반인데 테스타먼트의 오페라 박스물은 유일한 예외입니다. 거기서 주문하나 여기 수입되는 걸 사나 가격 상의 차이가 그다지 크게 나지 않는 탓이죠.

"지크프리트" 때도 느꼈지만 정말 52년 전의 녹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음질은 좋습니다. 물론 요즘의 신보에 비하면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지만, 이것과 역시 같은 레이블에서 나온 동년도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실황을 제외한 다른 50년대의 바이로이트 실황 음반들과 비교하면 이건 거의 뭐 하늘과 땅 차이랄까요. Mono, 그것도 가끔씩은 온갖 잡음이 끼어들어간 몇몇 음반들에 비하면 테스타먼트의 55년도 "반지" 실황물은 '그날 밤의 바이로이트 극장에 앉아있는 것 같다'는 "그라모폰"의 입발린 칭송에 걸맞는 Stereo입니다.

문제는 수록된 공연의 질인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발퀴레"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수들보다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쪽에 그 이유가 있는 듯 합니다. 카일베르트는 상당히 빠른 템포로 시원시원하게 달려나가는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때로는 약간 건성이다 싶을 정도로 무심히 악절들을 흘려보내고 있는게 문제입니다. 뵘의 1967년도 실황 "발퀴레"도 속도감의 측면에서는 이 음반에 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쪽은 듣는 이를 강력히 묶어두는 응집력 내지는 집중력이 있었는데 카일베르트의 "발퀴레"에서는 그런 것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고, "반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장면들 - 1막의 클라이맥스, 2막 후반의 "죽음의 예고" 장면, 3막 전주곡에서부터 보탄이 등장하기 직전까지의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도 3막 막판의 "보탄의 이별" 장면 - 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덤덤하게 지나가니 감상자 입장에서는 김이 팍 새는 기분이었습니다. 감정이 좀 무르익겠다 싶으면 벌써 지나가버리는 판이라, 음악에 몰입하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그라모폰"의 리뷰가 이 음반에 보낸 찬탄은 지금의 제게는 그야말로 "거품" 내지는 "립 서비스" 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꿈의 호화 캐스팅"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면면들로 구성된 가수진 덕분에, 그나마 본전 생각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호터의 보탄은 왜 그가 "영원한 보탄"이라고 불리는지를 납득하기에 충분할 정도였고, 바르나이도 라몬 비나이도 그들이 지니고 있는 명성에 걸맞는 호연을 들려주었습니다. 문제는 카일베르트와 악단의 '무덤덤한' 연주 때문에, 가수진들과 연주 사이에 왠지 모를 경계가 놓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가수들은 좀 더 감정을 실어 보고 싶은데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연주가 그것을 방해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써놓고 나니 악담 투성이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이상과 같은 평가가 단견일 가능성은 크리라 생각합니다. 카일베르트 본인이 제 리뷰를 읽는다면, "55년도 "반지"가 모두 발매된 다음에도 이런 혹평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라고 빈정거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인의 황금"에서부터 "신들의 황혼"까지를 차례대로 쭉 들어본다면, "발퀴레"에서 제가 느꼈던 연주의 무덤덤함 내지는 무성의함이 "반지"라는 거대한 작품 전체에서 그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는, 지휘자의 심오한 예술적 판단의 결과물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발퀴레"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인식한다면 이 음반은 아무래도 제 성에 안 차는 구석이 한 두군데가 아니지만, "니벨룽의 반지"라는 대서사시의 한 부분으로 관점을 달리해서 볼 때까지는 섣불리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루 빨리 "라인의 황금"과 "신들의 황혼"까지 마저 발매되어, 순서대로 전체를 감상해보는 때가 오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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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11/18 01:22 2006/11/18 01:22

바렌보임의 바이로이트 실황 "반지" DVD, 그 세번째 발매작인 이 "지크프리트"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보면 되는 겁니다! 이전에 발매된 동 프로덕션의 "라인의 황금"이나 "발퀴레"에서 느꼈던 일말의 아쉬움 내지는 불만감 같은 것은 느낄 겨를도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바그너 작품을 담은 영상물 중에서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가수들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가창과 표현의 한계에 도전하듯이 노래하고, 바렌보임의 지휘 역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며, 쿠퍼의 연출은 시각적인 즐거움마저 가득 채워줍니다. 너무 칭찬만 늘어놓고 있는게 아니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게는 모든 측면에서 고려해볼 때 더없이 만족스러운 영상물입니다. 특히 톰린슨의 보탄과 클라크의 미메는, 지금까지 접했던 모든 "지크프리트" 음반 및 영상물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가창과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톰린슨이 묘사한 보탄은 모든 일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나가려고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이율배반적으로 냉소적인 허무주의자로서의 태도를 고수하는 인물입니다. 아직은 세계도 영웅들도 자신의 힘과 의지에 복종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영웅이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새로운 세계를 열 것이라는 사실을 수긍하며 체념섞인 기쁨을 토로하는 보탄의 모습은 정말로 매력적이었습니다. 한동안 "지크프리트"에서의 지크프리트에 밀려 가장 좋아하는 바그너 타이틀 롤의 자리를 잃었던 보탄입니다만, 이 영상물 덕분에 다시 한번 보탄에 대한 애정도가 급상승하는 것을 느낍니다.

"라인의 황금"에서는 로게 역을 맡았던 클라크의 미메 역시 훌륭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딴에는 나름 영리하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헛똑똑이'에 불과한, 소악마처럼 비뚤어져버린 난쟁이 대장장이의 모습을 뛰어난 솜씨로 잘 묘사해내는 클라크의 가창과 연기는 과거 신 바이로이트 시대의 위대한 미메들과 비교해봐도 꿀릴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클라크는 뵘의 1966/67 바이로이트 실황 "반지"에서 동역을 맡았던 볼파르트와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듯 하지만, 그보다 좀 더 희극적인 면에서나 비극적인 면에서나 한발자국 정도 더 나아간 해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가수들도 각자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난 가창과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그것을 바렌보임의 능숙하고도 치밀한 지휘가 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쿠퍼의 무대 연출 역시 2막에서 용이 기대보다는 보잘것없이 표현된 것을 제외하면(하긴, 용이 용답게 느껴지는 "지크프리트"가 현실의 무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음악과 대본이 의미하는 바를 잘 살려내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준수한 것이었습니다. 뵘의 1966년 바이로이트 실황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은 극과 음악의 유기적이고 완벽한 합일을 추구하는 바그너의 악극 이론이 꿈꾸는 이상에 매우 근접한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이 영상물 또한 그와 동일한 평을 받아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음악적으로도 연극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동시에, 두 분야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잘 결합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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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8/10 23:32 2006/08/10 23:32

제대로 된 감상문은 테스타먼트의 1955년도 바이로이트 실황 "반지"가 모두 발매되면 그때가서 쓰기로 하고, 일단은 가장 먼저 발매된 이 "지크프리트"를 초회 감상하면서 느낀 점 몇 가지만 써두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뭐니뭐니해도 음질입니다. 처음 콤포넌트에서 울려퍼지는 소리를 들었을 때 순간적으로 1970년대의 녹음인 줄 알았습니다. 칼 뵘의 1966/67년도 바이로이트 실황 "반지"의 녹음 상태보다 좀 더 낫고, 이전에 출시된 50년대의 바이로이트 실황물들과는 비교 자체를 하면 안 될 정도였습니다. "놀라운 음질로 생생하게 포착된 최초의 스테레오 "반지""라는 테스타먼트의 광고 문구는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이처럼 좋은 음질로, 50~60년대의 바이로이트를 빛낸 명가수들의 생생한 열연을 느낄 수 있으니 금상첨화입니다. 전성기의 볼프강 빈트가센이 맡은 지크프리트는 제가 꿈꾸던 이상적인 모델에 가장 근접한 듯 합니다. 1966/67년도의 "지크프리트" 제 1막  중 "칼 벼리는 노래"에서의 실망스러운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습니다. "영원한 보탄" 한스 호터 또한 그 못지 않게 감상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존재이죠. 품위있고 귀족적이면서 숭고한 목소리는 가부장적인 절대자라는 이미지를 지닌 보탄을 들려줍니다.

미메 역을 맡은 폴 쿠엔에 대해서는 좀 생각을 더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66/67년도의 "지크프리트" 에서 에르빈 볼파르트는 마치 광기에 휩쓸린 작은 악마 내지는 타락자 같은 분위기의 미메를 들려주었고, 개인적으로는 그러한 표현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음반에서 폴 쿠엔은 미메를 나약하고 비열한 소인배 정도로 묘사하고 있는데, 볼파르트의 미메를 좋아하던 사람의 입장에서는 미메라는 캐릭터의 인상이 조금 흐려진 편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쿠엔의 해석이 틀렸다는 말은 아닙니다. 단지 좀 약하다는 것이죠.

그리고 바르나이의 브륀힐데는 괜찮았습니다. 비록 비르기트 닐손이 보여주던 강철제의 카리스마는 좀 부족하지만, 그보다 좀 더 여성적인 온화함을 갖추면서도 그 밑에 숨겨진 강인한 정신을 드러내는 그녀의 목소리는 과연 마르타 뫼들과 닐손과 함께 3대 브륀힐데라고 불릴만 하다고 생각합니다. 약간 아줌마 같다는(?) 생각도 들기는 합니다만 이건 뭐....... 마지막 이중창에서 "빛나는 사랑, 웃고 있는 죽음!"을 외칠 때 좀 더 길게 끌어주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네요.

요제프 카일베르트의 지휘에 대해서 간단히 말해보자면, 매우 빠르고 박력이 넘친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뵘 역시 상당히 빠른 편에 속했습니다만, 카일베르트는 때때로 그보다 더 빨리 달려나가는 듯 하네요. 그러면서도 융통성 있게, 감성적인 부분에서는 적절히 속도를 늦혀주기도 하는 모습이 보입니다. 뵘이 지니고 있던 "강철 폭풍" 의 오오라는 찾아볼 수 없지만, 힘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카일베르트의 지휘는 매력적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66/67년도의 "반지"와는 달리, 이 음반에서는 막이 끝날 때마다 열광한 관객들이 쳐대는 박수 소리가 그대로 들어있습니다. 실황의 감동과 여운을 제대로 살려주는 이 박수 소리를 남겨준 것에 감격할 뿐입니다. 필립스의 바이로이트 실황물들은 박수 소리를 몽땅 빼버리는 바람에 아쉬운 점이 있었지요.

이 싸이클의 다음 번 출시작은 "발퀴레"인데, 유럽에서는 이미 발매되었군요. 어서 어서 우리 나라에도 수입되었으면 합니다. 덤으로 거의 달성 불가능한 희망을 토로해보자면, 가격은 딱 1만원 정도만 내려줬으면.....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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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5/28 13:37 2006/05/28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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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를 맡고 하리 쿠퍼가 연출을 담당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니벨룽의 반지" 바이로이트 실황의 두 번째 DVD가 나왔습니다. 이번에 나온 것은 총 4부에 달하는 "니벨룽의 반지" 중 제 1부에 해당하는 "라인의 황금"입니다. 작년 9월에 "발퀴레"가 나왔고, 이번에 "라인의 황금"이 나왔으니, 올해 5월에 발매 예정인 "지크프리트"와, 발매 시기가 가을로 예정된 "신들의 황혼"만 나오면  바렌보임 - 쿠퍼 프로덕션의 "반지" 영상물도 완결되겠군요.

"라인의 황금"은 "반지" 전체의 내용 가운데서도 무대를 통해 표현하기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등장하기 이전의 신화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탓에, 보통의 무대 연출로는 표현해내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요소가 많기 때문입니다. 바그너 본인이 "라인의 황금" 대본의 제일 첫 페이지에 써 놓은 다음의 무대 지시 하나 만으로도, 연출가 앞에 놓여 있는 난제가 얼마나 어마어마한 것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라인 강의 처녀들이 나체인 상태로 물 속에서 유유히 물장구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프로덕션의 연출가인 하리 쿠퍼는 바그너의 끝간 데 없는 환상의 결과로 등장하게 된 이 난제들을, 레이저를 중심으로 하는 각종 특수 효과의 사용으로 돌파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적어도 순수하게 시각적인 점에 있어서는 실로 바이로이트 역사 상 유래없는 충격을 관객들에게 선사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감탄했던 장면은 제일 첫 부분의 "라인 강 깊은 곳" 장면입니다. 앞서 언급한 무대 지시가, 레이져로 묘사한 라인 강의 물줄기와 높은 곳과 낮은 곳이 혼재하는 무대 바닥이라는 두 요소를 통해, 거의 완벽하게 표현된 듯 했습니다. 실제로 라인 강 깊은 곳에서 요정들이 헤엄을 치는 모습을 보는 것 같더군요. 물론 반짝이는 반투명의 의상을 입고 펑키한 화장을 하고 있는 요정들의 모습과, 무대를 가득 수놓은 레이저 빚줄기의 대향연은, 너무나 현대적이기 때문에 1세기 전에 바그너가 처음 의도했던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고 해야 겠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극한에 다다른 특수 효과의 사용에도 불구하고, 쿠퍼의 "라인의 황금"은 '화려함 속의 난잡함' 이라고 이름붙여야 할 아쉬움을 남기게 합니다. 연출의 기본이라고 해야 할 등장 인물들의 행동 지시에 있어서, 이해와 납득이 되지 않는 군더더기가 너무 많습니다. 의미없이 남발되는 듯한 가수들의 손동작과, "발퀴레"에서도 등장했던 '바닥에 데굴데굴 구르기' 같은 것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 이러한 무대지시들은 도대체 그것들이 바그너의 악극 이론과 얼마나 부합하고 있으며, 현대 무대 연출 기법의 측면에서 본다고 해도 그렇게까지 해야만 하는 것인지가 매우 의문스럽습니다. 허공에 손짓을 해대고 무대를 기어다니거나 굴러다니는 가수들을 보고 있자니, 여배우들의 의상 소매들을 죄다 의상의 허리에다 꿰매 버렸다는 코지마의 행동이나, 거의 모든 소도구와 배경들을 생략하다시피 하고 오로지 조명과 음악만으로 조부의 무대 지시들을 표현해내려고 했던 빌란트 바그너의 "신 바이로이트 연출"이 갑자기 떠오르더군요.

바렌보임과 쿠퍼의 "라인의 황금"은 음악적인 측면으로는 딱히 흠 잡을 데가 없고, 시각적인 면에서의 무대 연출은 실로 한계에 도달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뭔가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음악적 수준은 아무래도 거장들로 가득했던 1950~60년대에 비하면 모자란 부분이 많고, 무대 연출 역시 패트리스 셰로의 연출과 비교해볼 때 재해석의 깊이와 합리성의 측면에서 뒤떨어지는 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기대의 정도와 평가의 잣대를 약간 낮춘다면, 이 "라인의 황금"은 역시 대단하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니벨룽의 반지"에 새로 도전해보고자 하는 입문자들에게는, 화려한 특수 효과로 가득 찬 무대와 끝내주는 화질 및 음질로 무장한 이 타이틀은 아주 만족스러운 '첫경험'을 선사해줄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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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2/22 21:42 2006/02/22 21:42

솔직히 고백하자면 이 음반은 사실 "뀡 대신 닭"의 심정으로 구매했던 물건이었습니다. 재작년에 한참 바그너에 빠져 있을 때, 스튜디오 녹음반으로 하나, 그리고 바이로이트 실황반으로 하나, 이렇게 한 작품 당 두 개씩의 음반을 구매하자는 계획을 세웠었죠. 좋은 음질과 정확한 연주라는 스튜디오 녹음반의 장점과, 생생한 현장감과 바이로이트 사운드의 효과라는 바이로이트 실황반의 장점을 모두 섭렵해보겠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물론 언제나 그렇듯이 모든 일이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습니다만.......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의 경우 처음에는 스튜디오 녹음반으로는 카라얀의 1970년 녹음(EMI)을, 그리고 바이로이트 실황반으로는 바르비조의 1974년 실황(PHILIPS)을 예정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르비조 반은 어딜 가나 "품절"이더군요.ㅜ_ㅜ 그래서 그 대신 이른바 "역사적인 연주"라는 카라얀의 1951년도 실황(NAXOS)을 사게 된 것이었습니다.

1951년이라는 녹음 년도에서 예상할 수 있듯이, 그리고 이 음반을 권하는 분들의 사전 경고 그대로, 음질은 저명한 복각 전문가 마크 오버쏜이 손댔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뒤떨어집니다. 특히 총주 부분이나 합창단과 가수들이 일제히 뒤섞이는 부분 등은 제대로 음을 판별하기가 힘들 정도로 뭉개지더군요. 때문에 바르비조 반을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한 동안 이 음반을 잘 듣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역사적인 명연" 이라 해도 음질이 나쁘면 멀리할 수 밖에 없다고 변명하면서 말이죠.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같이 구매한 스튜디오 녹음반 역시 덩달아 손이 잘 안 가져서, 결국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라는 작품 그 자체마저도 여타의 바그너 작품들에 비해 왠지 정이 안 가게 되더군요.

오늘 아침, 갑자기 '간만에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들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그럴 때마다 카라얀의 1970년도 스튜디오 녹음반을 선택했습니다만, 오늘은 다른 것도 좀 들어보자는 심정으로 책장 구석에 먼지가 쌓인 채로 처박혀있던 이 녀석을 꺼내들었지요. 그런데 오늘따라 왠일인지 예전에 들었을 때와는 전혀 색다른 느낌과 감동이 몰려오더군요. 비록 음질은 다른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떨어지는 편이지만, 그 안에 담겨있는 내용 그 자체는 분명 "역사적인 명연"이라는 평가에 걸맞는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그런 기분을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처음 이 음반을 구매했을 때와는 달리 제가 1951년도 바이로이트 축제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좀 더 이해하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1951년의 바이로이트 축제는 단순히 제 2차 세계 대전 종결 후 처음으로 열린다는 외형을 뛰어넘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바그너의 음악이 나치의 선전 도구로 악용되었다는 제 3제국 시절의 어두운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는 독일 음악계의 역사적 사명이었습니다. 특히 그 중에서도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나치에게 악용당한 독일 예술을 상징하다시피 하는 존재였기 때문에 더더욱이 그와 같은 비극적이고 불유쾌한 전과를 청산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음반에 담겨 있는 공연은 바로 그러한 청산 작업의 결과물입니다.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는 이 공연을 통해 나치의 선전도구가 아니라 순수한 음악 예술로 다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독일 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로운 음악 활동을 통해 모든 인류가 화합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바그너 유일의 희극이라는 본모습을 되찾은 것이지요. 녹음된 공연 전체에 감도는 따스하고 활기찬 분위기의 음악과, 마음껏 웃음을 터뜨리고 기뻐하는 관객들의 왁자지껄한 반응은 분명 그런 의미를 담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까지 제 3 제국의 일원으로써 나치에게 협럭하거나 그들에게 종속된 인생을 살아 왔던, 카라얀과 슈바르츠코프를 비롯한 모든 음악인들과 관객들에게 있어서, 이 공연은 과거에 대한 속죄와 새출발을 위한 다짐을 행하는 한바탕의 흥겨운 살풀이였음이 분명합니다.

음악적 우수성이나 음질이라는 면에서만 본다면 이 음반은 상당히 과대평가를 받고 있는 게 분명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잣대만으로는 미처 잴 수 없는 것들을 감안했을 때, 이 음반은 분명히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 의 유일무이한 "역사적인 명연" 입니다. 예술이 예술로서의 본모습을 되찾고, 한 민족 집단이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털어내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 광경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음질이 나쁘다는 이유 만으로 이 음반을 멀리했던 저의 좁은 소견머리가 실로 부끄럽고, 뒤늦게나마 그 진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는 게 기쁩니다.

ps: 그렇다고 해도 이 음반이 바그너에 이제 겨우 관심을 가지게 된 분들이나, "뉘른베르크의 마이스터징거"를 들어보고 싶어하는 분들에게 우선적으로 추천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라는 점은 명백합니다. 요컨데, 왠만큼 바그너에 대한 공력이 쌓인 중급자 이상을 위한 음반이라고 해야 할런지요.......(앗, 쓰고 보니 마치 제가 중급자 이상이다! 라고 뻐기는 듯한 뉘앙스가 되고 말았군요. 그렇게 잘난 척하는 의미는 아닙니다...ㅜ_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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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2/06 19:24 2006/02/06 19:24

["우리~만남은~우연이~아니야~"]

오늘 팀 버튼 감독의 "유령 신부"를 보러 용산 CGV에 갔었습니다. 기대한 것에 비하면 영화는 좀 별로더군요. 영화를 본 후에 시간을 좀 때울까 해서 들렀던 근처 신나라 레코드 점에...... 그토록 찾아 헤맸던 볼프강 자발리쉬 지휘의 1962년도 바이로이트 실황 "탄호이저"가 있었던 겁니다! 정말이지 그건 하늘의 계시가 있었던 만남이었다고 밖에 달리 설명할 길이 없네요. 왠지 오늘따라 음반점에 가보고 싶더라니만은.......^^;

이 음반은 예전에 올렸던 100문 100답에서도 "당장 듣고 싶은 음악" 질문에 답으로서 써두었던, 그야말로 제게 있어서 구매 희망 0순위의 음반이었습니다. 하지만 불행히도 이미 단종되었다는 업계의 사정으로 인해, 온라인 음악 쇼핑몰들에서는 이 음반을 구할래야 구할 수가 없었었지요.
오프라인 매장들도 이곳저곳 들를 때마다 이 음반에 대해 문의를 해보았었지만, 풍x당 같은 유명한 곳에서도 학교 구내 매점같은 허접한 곳에서도 이 음반의 그림자조차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나도 구하고 싶었지만 잠정적으로 포기하다시피 한 음반이었는데, 정말 운명적인 만남을 통해 들어보게 되었군요.

우선 자발리쉬의 지휘에 대해서 언급하자면, 제가 처음으로 산 바그너 전곡반인 89년도 "반지"에서도 느꼈었던 그 유장함이 기본적으로 느껴집니다. 동시에 40여년 전의 젊은 시절의 자발리쉬가 지니고 있었던 활력과 열정이 가미되어, 듣다 보면 매우 강렬하고 거친 표현이 등장하기도 하더군요. 물론 '힘으로 밀어붙이는' 지휘의 대명사, 솔티 경의 1971년도 스튜디오 녹음 탄호이저에 비하면 좀 더 부드럽습니다만, 사실 탄호이저의 내용을 생각해보더라도 자발리쉬의 지휘가 그 밖의 점에 있어서 솔티에 비해 밀릴 것은 전혀 없다고 생각됩니다.

가수진들은 그야말로 1960년대 바이로이트 극장의 황금기를 그대로 보여주는 듯한 호화 멤버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탄호이저 역에 볼프강 빈트가센, 영주 헤르만 역에 요제프 그라인들, 엘리자베스 역에 안야 실랴, 베누스 역에 바이로이트 최초의 흑인 출연진으로 역사에 이름을 남긴 그레이스 범브리....... 이들 모두가 그 멋진 노래 솜씨를 유감없이 발휘합니다.

특히 볼프강 빈트가센의 연기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솔티 반의 르네 콜로보다는 좀 더 완숙하다고 표현해야 할까요? 특히 3막의 "로마 이야기" 막판에, 교황의 저주가 내리는 장면에서 경악한 듯이 굉음을 내는 콜로와는 달리, 절망하는 듯이 목소리가 더욱 꺼져들어갔다가 이후에 베누스베르크로 돌아가겠다고 말할 때 비로소 고음으로 외쳐대는 점에서, 빈트가센의 인물 해석의 깊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솔티 반과 비교해가면서 들으니 여러 모로 재미있는 점이 많더군요. 두 음반의 가장 큰 차이는 전의 작품 리뷰에서도 언급한 판본 문제인데, 솔티 반이 파리 판본을 사용하는 것에 비해 이 음반은 이른바 혼합 혹은 절충 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1막 서곡에서 바카날을 등장시키는 데까지는 파리 판본을 따르나, 그 이후에는 대체로 개정된 드레스덴 판본을 따르는 식입니다. 파리 판본에서는 삭제되거나 변형된 부분들이 여기저기 있어서, 솔티 반에 익숙해진 저로서는 완전히 다른 작품을 듣고 있는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오랜 동안 그리고 또 그리던 음반이라 무척 기대하며 들었는데,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서 매우 기쁩니다. 한 동안 저의 애청 음반의 위치를 점하게 될 듯 하네요.^^ 마지막으로, 제가 이걸 집어가버린 바람에 안 그래도 구하기 힘든 음반 더욱 구하게 어렵게 되어버린 다른 바그너 애호가 분들께는 죄송하다는 말씀을 올립니다.^^; (....이건 명백한 염장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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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5/11/06 21:58 2005/11/06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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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풍월당에 입고되어 저를 포함한 모든 한국 바그네리안들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던, 다니엘 바렌보임이 지휘하고 하리 쿠퍼가 연출을 맡은 1992년의 바이로이트 (유사)실황 "발퀴레" DVD를 오늘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하였습니다.

우선 전체적인 평가를 해보자면, 과연 세상은 허명을 전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스레 실감했습니다. 예전에 "니벨룽의 반지" 리뷰의 말미에서 적은 바와 같이, 지금까지 등장한 "반지" 전곡반 CD들 중에서 3대 걸작을 꼽으라면 DECCA의 솔티 경, PHILPS의 뵘, 그리고 TELDEC의 이 바렌보임 지휘반을 들 수 있는데, 그 중에서도 바렌보임의 것은 영상이 배제된 음악만으로도 고전적인 명연인 솔티 경과 뵘의 것들과 같은 대열에 설 수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지요.

이번에 발매된 이 DVD는 그렇게 좋은 평가를 받아오던 바렌보임 지휘-하리 쿠퍼 연출 프로덕션 시절의 바이로이트에서 행해진 "반지" 공연의 진정한 가치를 새삼 깨닫게 만들어줍니다. 1978년의 패트리스 쉐로가 연출했던 "반지" 못지 않는 찬반 양론의 치열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는 하리 쿠퍼의 전위적인 연출이 극상의 화질과 넓은 화면, 거기에다 더욱 향상된 음질로 생생하게 눈앞에 펼쳐지니까요.

좀 더 세부적으로 평가해보자면, 우선 오랜 동안 한국의 바그네리안들에게는 일종의 전설이나 마찬가지였던 하리 쿠퍼의 "전위적" 연출이 결코 허황된 이야기가 아니었음을 이 DVD는 증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등장 인물들의 모습에서부터 충분히 "전위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죽 재킷과 청바지를 입고 가죽부츠를 신고, 한쪽 안경알이 새까만 선글라스를 착용한 채 한 손에 번쩍이는 쇠파이프같은 창을 들고 등장하는 보탄의 모습부터가 전통적인 보탄의 이미지를 완벽하게 파괴하는 파격입니다. 보탄은 신 바이로이트 시대 때는 단순함 속에 내포된 강대한 힘과 위엄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고, 1978년의 연출에서의 보탄 역시 최소한 귀족-부르주아 계급의 최고권력자로서 휘황찬란한 위광을 뽐냈었습니다.
하지만 하리 쿠퍼가 만들어낸 보탄의 이미지는 한마디로 "폭주족의 두목"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놀라운 점은, 그런 거칠고 야성적인 면모의 현대판 탕아를 연상케 하는 보탄에게서도, 이전의 프로덕션들이 창조해낸 보탄의 이미지들 못지 않은 압도감을 느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지크문트나 훈딩, 9명의 발퀴레 등의 다른 등장 인물들도 이와 유사하게, 현대적인 복장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는 이로 하여금 묘하게 수긍이 가게 만드는 모습들을 하고 있었습니다.

연출의 전위적인 측면에 대해 또 한가지 언급할 것은, 하리 쿠퍼의 연출은 유독 달리고 구르고 기어다니는 등의 격렬한 육체적 활동을 출연진들에게 요구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4시간의 상영 시간 내내, 가수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오르락내리락거리고, 드러누웠다가 일어섰다가 하며 바쁘게 움직입니다. 거기에다 안 그래도 힘들기 짝이 없는 바그너 스타일의 노래까지 불러제껴야 하니, 가수들이 엄청난 중노동을 해냈다는 이야기가 되죠. 덕분에 예전에 레바인이 지휘한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프로덕션의, 철저하게 바그너의 오리지날 연출을 따랐던 "발퀴레"를 봤을 때와 비교해보면 훨씬 덜 지루하긴 했습니다.

하리 쿠퍼의 연출에서 반드시 언급해야 할 것, 그것은 바로 조명의 다양함과 현란함이겠죠. 생각해보면 하리 쿠퍼의 무대 연출은, 각종 소도구나 설비의 면에 있어서는 신 바이로이트 시대 못지 않게 간소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간략화되고 단순해진 무대는 각종 조명의 사용으로 인해 오히려 더욱 풍성한 무대 효과들로 가득 채워지게 되더군요. 특히 보탄이 브륀힐데를 불의 원 안에 봉인하는 장면에서 한바탕 벌어진 레이저 쇼는, 제가 지금까지 보아왔던 여러 연극과 오페라, 뮤지컬들의 무대 효과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상과 같은 연출의 파격적이고 전위적인 면모에 관심이 쏠리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감상의 비중이 떨어지긴 했습니다만, 음악적인 면에서도 1992년도 바이로이트의 "발퀴레"는 매우 높은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는 것을 충분히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솔티 경의 지휘가 유도동기를 명확하게 부각시키는데 치중하였고 뵘이 강철 폭풍마냥 정신없이 휘몰아쳤다면, 바렌보임은 열정적이고 강렬한 분위기를 이끌어내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음악의 분위기는 역동적인 무대 연출과 잘 어울려서 감상자로 하여금 격한 감정의 발로에 마구 휩싸이게 만드는 마력을 발휘했습니다. 물론 가끔 가다가 연출과 음악이 약간씩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부분이 눈에 띄기는 했습니다만, 전체적으로 본다면 열정적인 음악과 전위적인 무대 연출이 잘 맞아떨어져서 놀라운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발생시키는데 성공하였음이 명백하게 느껴집니다.

이처럼 칭찬을 늘어놨습니다만, 예전의 리뷰에서 언급한 것처럼 "반지"를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일정 수준 이상의 사전 지식들이 필요합니다. 특히 영상물의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지요. "반지"의 대사 정도는 일정 부분 이상 숙지해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정도의 준비조차도 안 되어 있을 경우 이처럼 파격적인 연출과 화끈한 음악을 보고 들어도 지루하고 답답하게 느낄 소지가 다분합니다. "반지"의 대사를 잘 알고 있고, 거기에다 유명한 주요 유도동기들을 귀에 미리 익혀두셨다면, 이 1992년의 "발퀴레" 바이로이트 실황의 진가를 맛보시기에는 충분한 준비가 갖춰져 있는 셈입니다.

이토록 멋진 영상물을 보고 난 뒤의 제 머릿속에는 단 두 가지 생각 밖에는 떠오르지 않는군요. 하나는 어서 DVD의 재생이 가능한 환경을 구비해야겠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 영상물과 동일한 프로덕션의 다른 작품들, 즉 "라인의 황금", "지크프리트", "신들의 황혼"이 어서 빨리 발매되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둘 다 돈이 들어가는 일이군요. 안 그래도 요즈음 자금난인데...... 어서 빨리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입장이 되지 않으면, 저를 기다리는 것은 신용불량자가 될 것인가 취미 교양 생활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암울하기 짝이 없는 양자택일의 순간 뿐이겠네요. OT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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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5/08/30 00:46 2005/08/30 00: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