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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어느 경과구에 대해 그에게 물었습니다. ‘박사님, 여기는 얼마나 빠르게 해야 합니까?’ 해결을 보지 못한 물리학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아, 그건 어떤 소리가 나느냐에 달렸습니다.’”
- 세르주 첼리비다케

“서주에서 주테마로 넘어가는 이행부에서 그는 콘트라베이스 부분 다음에 현악의 시작 신호를 너무 작게 주어 손동작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콘서트마스터가 물었지요. ‘박사님, 시작 신호를 더 분명하게 주실 수 없을까요?’ 푸르트벵글러가 대답했습니다. ‘분명하지 않을수록 좋아요.’”
- 오렐 니콜레, 1947년 루체른에서 「레오노레」서곡 3번 연습 당시의 일화

“아주 느리게 연주하면서도 듣는 이의 머리 속에 전체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일은 위대한 지휘자만이 가능합니다. 푸르트벵글러가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1950년 푸르트벵글러가 아르헨티나에서 「마태 수난곡」을 연주할 때 나는 보조 지휘자였습니다. 그의 속도는 유행에 뒤졌고 지독하게 느렸지요. 나는 그의 연주 방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내면에서 끊이지 않는 그 거대한 흐름에 감탄했습니다. 그건 그한테서만 흘러나오는 것이었어요. 이 작품을 너무나 강렬하게 느낀 푸르트벵글러는 함께 연주하고 노래한 350명의 연주자들에게 그 느낌을 전달했습니다. 그건 최면으로까지 이어지는 심리적인 힘이었습니다.”
- 미하엘 길렌

“그는 연주를 자주 반복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한 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연주했고 마이크로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덕분에 녹음은 훌륭했다. 그때 우리가 막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도입부가 일치하지 않았다. 당장에 전화벨이 울렸다. 푸르트벵글러는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미국이 아닙니다!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합니다!’”
- 오렐 니콜레, 1951년 12월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슈베르트 교향곡 다장조 녹음 당시 일화

“푸르트벵글러가 3막 직전에 넣은 「레오노레」서곡 3번은 단원들이 자면서도 연주할 정도의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연습 내내 이 작품에 몰입해 있던 푸르트벵글러는 자꾸만 크레센도를 요구했다. 계속해서 크레센도가 이어지자 우리 콘서트마스터가 악보에 그렇게 적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총보를 들여다보았다. ‘그렇군요, 그래도 이게 더 아름다워요.’ 그토록 그는 음악에 빠져 주변의 것들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 발터 바릴리, 1953년 10월 12일 「피델리오」연습 중의 일화

*이상은 모두 헤르베르트 하프너, 이기숙 옮김, 「푸르트벵글러」(마티)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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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전집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스톡홀름 필하모닉, 바이로이트 축제 오케스트라 & 합창단(EMI):
    이 푸르트벵글러 유일의 공식 전집에 대한 상세한 감상은 예전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거기에서는 '옥석혼효'라고 평가했지만, 그 후 여러번 감상을 거듭할수록 오래되어 세공이 깨지거나 무뎌진 채로 빛이 바랜 보석더미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음반이다. 명연이니 졸연이니를 따질 것 없이, 클래식을 듣는다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꼭 한번 쯤은 이 전집에 다다르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여기 포함된 1951년 바이로이트에서의 9번 실황이야말로 푸르트벵글러의 연주 스타일에 있어서 일종의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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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적인 전후 공연집"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Tahra):
    1951년에서 1954년까지의 일부 연주들을 총 4장의 CD에 수록하고 있는 음반. 전후 시기 푸르트벵글러의 실황 연주들 중에서도 특히 평이 좋은 것들을 선별하여 담고 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베토벤 교향곡 3, 5, 6번 연주, 1954년 루체른에서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브람스의 교향곡 1번 및 하이든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뜻 들어보면 전시 녹음들의 강렬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져 보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푸르트벵글러가 최만년에 도달한 경지를 느끼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게끔 하는 연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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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7, 8번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rfeo):
    1954년 8월 30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있었던 실황을 그대로 담은 음반이다. EMI의 전집에서 조악하기 그지 없는 음질로 아쉬움을 남겼던 스톡홀름 필하모닉과의 8번 연주를 대체하기에 안성맞춤으로, 8번과 같은 '마이너'한 작품에 대해서도 푸르트벵글러가 연구와 탐색을 그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50년대 중반의 녹음으로 음질도 푸르트벵글러의 모든 음반들 중에서 매우 좋은 축에 든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그해 11월 30일에 영면한 푸르트벵글러로서는 빈 필하모닉과의 마지막 공식 연주였는데, 당시 그가 여러 지병들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 자체에서는 병기운 같은건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베토벤의 음악 그 자체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현하는 거장의 모습만이 들어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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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너 관현악곡집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Eloquence):
    1949년부터 1954년 사이,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가진 여러 바그너 관현악곡 연주 실황들 중 일부를 발췌해서 수록한 음반. 시기도 장소도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녹음 상태도 들쑥날쑥이지만, 다행스럽게도 EMI 베토벤 교향곡 전집의 2번과 8번 같은 '재앙'은 없다. 1951년을 경계로 푸르트벵글러의 지휘 스타일이 좀 더 완숙해졌음을 확인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데, 1949년의 "명가수" 서곡과 1954년의 "장송행진곡"을 비교해보면 그 점이 확연히 느껴진다. 푸르트벵글러의 바그너 관현악곡집이라고 하면 EMI에서 나온 빈 필 및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스튜디오 녹음 연주들이 또한 유명한데, 언젠가 그쪽도 구해서 이 음반과 비교해보면 실로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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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7/31 15:35 2008/07/3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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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녹음한 각종의 연주들은 음질 면에서나 해석 면에서나 모두 현재의 대세와는 정반대에 있다. 디지탈 스테레오 기술이 제공하는 선명하고 깨끗한 음질, 그리고 '작곡가의 창작 의도에 시대적, 합목적적으로 부합하려는' 정격연주 스타일에 익숙해진 오늘날의 감상자들에게 열악한 음질과 제멋대로에 가까워 보이는 해석으로 이루어진 푸르트벵글러의 녹음들은 극히 이질적인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의 녹음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녹음된 연주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역사상 최악의 독재 정권인 나치 독일 치하에서, 거기에 더해 전쟁 중이라는 극한의 상황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위대한 예술가가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표출해낸 자신의 시대적 감정들은 그로부터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전시 녹음들에서 일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 부분에 걸쳐 팽배하게 유지되는 긴장감과 깊디 깊은 심연과도 같은 어두움의 분위기이다. 1944년 12월 19~20일에 녹음된 베토벤 교향곡 제 3번 2악장, 1943년 6월 30일의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 등의 유명한 전시 녹음들은 그와 같은 느낌들을 특히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유독 전시 녹음에 이러한 특유한 느낌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의 해답은 지휘자 본인이 이 시기에 겪고 있었던 외적, 내적 갈등에 기인한 절망과 고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세기 말의 교양있는 시민층에 속해있던 푸르트벵글러는 선천적으로 나치라는 존재 그 자체에 완전히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독일 음악 예술을 대표하는 존재로 자타가 공인하던 그 자신의 위치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자부심 그리고 사명감은 그로 하여금 발터나 클렘페러 등의 다른 음악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망명의 길을 택하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푸르트벵글러가 유일하게 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과 정치는 별개" 라는 그 자신의 신념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그 신념은 가혹한 환경 속에 놓인 연약한 관상 식물이나 다름없었다. 나치를 받아들일 수도, 그렇다고 독일을 등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예술과 정치가 전혀 다른 영역에 위치한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색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현실에 안주하기에 급급한 중산층의 정치적 변명에 불과했다. 푸르트벵글러는 "회색인"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회색인의 운명은 양 극단에 자리잡은 자들에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한 나락에 떨어진 예술가의 절망과 고뇌가 전시 녹음들에 한가득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은 세월이 흐른 지금의 우리들이 "회색인" 푸르트벵글러의 우유부단함과 그로 인한 잘못된 선택을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들 대부분도 푸르트벵글러와 비슷한 태도를 취하게 되기 십상일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가 가장 가혹한 시대 환경 속에서 택한 너무나도 평범하지만 눈물겨운 선택과 그것이 낳게 된 비극적인 결과가 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키는 안타까움의 무의식적 공감대, 그것이 푸르트벵글러의 전시 녹음들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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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제 3번 Etc.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4.12.19~20.(Archipel):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리품으로서 소련 모스크바 방송국에 보관되었던 푸르트벵글러의 전시 음원들은 60년대에 들어 소련 국영 레이블 멜로디야에서 LP화 되었다. 그 중 1944년 12월 19~20일의 베토벤 교향곡 제 3번은 미국의 해적 음반사 "우라니아"에 의해 서방 세계에 출시되었는데, 특유의 공격적이고 광포한 음향으로 명성을 얻었다. 염가 복각 전문 레이블 Archipel이 그 "우라니아" 초반 LP를 마스터로 하여 복각시킨 CD이다. 그냥저냥 들어줄만한 음질에 염가라는 매력때문에 집어들게 된 CD. 최근 출시된 멜로디야의 리마스터링한 푸르트벵글러 전시 녹음 시리즈의 동곡 녹음으로 교체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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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제 4번, "코리올란" 서곡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3.6.27~30.(일본 유니버셜): 2004년 푸르트벵글러 사후 50주년을 맞아 고인의 팬층이 두터운 일본에서 기념으로 냈던 일련의 세트들 중에 속해있는 녹음. 음원 자체가 43년 6월 27일과 30일에 있었던 두 개의 동곡 연주를 짜맞추기했기 때문인지, 왠지 또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맛은 약하다. 하지만 연주 그 자체는 베토벤 교향곡 제 4번에 대해 "일종의 쉬어가기" 라고 생각하는 기존 인식을 재고케 할만한 점이 있다. 1악장 도입부의 무겁고 어두운 긴장감이 밝은 분위기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이후 부분 전체에 걸쳐 숨겨진 배경으로서 깔려있는 듯한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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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제 5번, 제 7번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3.6.30./1943.11.3.(DG): 아마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전시 녹음 음반일 듯 하다. 1987년 모스크바 방송국에 보관되어 있던 전시 녹음 음원 마스터 테이프들이 일련의 협상을 거쳐 독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바로 그 마스터 테이프를 기본으로 복각한 음반이다. 음질 자체의 향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듯 하나,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놀라운 지휘 감각을 맛보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나 구스타프 두다멜 등이 20세기 후반 이후 녹음한 같은 커플링의 녹음들과 비교해보면 무척 재미있다. 푸르트벵글러의 음악 세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치게 되는 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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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제 6번 Etc.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4.3.19.(Melodiya): 러시아 국영 음악사 "멜로디야"에서 소련 시절부터 남아있던 푸르트벵글러 전시 녹음 음원들을 새로이 리마스터링해서 재출반한 일련의 전시 녹음 세트들 가운데 하나. 1944년 3월 19일날 방송용으로 녹음되었던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의 전체 프로그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상태 좋은 마스터 테이프가 보관되어 있다는 기존의 통설을 증명하듯이 비교적 좋은 음질을 들려준다. 압권은 역시 4악장의 폭풍우 장면으로, 그야말로 '휘몰아치는' 느낌이다. 함께 수록된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제 2번" 역시 듣는 맛이 쏠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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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제 9번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tc., 1942.3.22.(Melodya): 이 음반 역시 위의 제 6번과 마찬가지로 멜로디야의 새로운 리마스터링 세트들 중 하나이다. 흔히들 푸르트벵글러의 3대 "합창" 녹음으로 손꼽히는 42년, 51년, 54년 연주들 중 유일한 전시 녹음인데, "합창"이 조물주의 창조의 위대함에 대한 인간들의 찬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대혼란과 파국 그리고 그에 대한 공포를 묘사한다고 보는 일부의 시각에 부합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4악장 말미의 어마어마한 폭주, 20분에 육박하는 3악장, 1악장에서 등장하는 더블링한 팀파니의 굉음 등 감상자를 놀라게 하는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스타일이 고도의 긴박감과 함께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감흥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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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2/07 19:36 2008/02/07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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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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