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의 녹음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수없이 많다. 특히 제 2차 세계대전 중에 녹음된 연주들에 대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역사상 최악의 독재 정권인 나치 독일 치하에서, 거기에 더해 전쟁 중이라는 극한의 상황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위대한 예술가가 음악이라는 수단을 통해 표출해낸 자신의 시대적 감정들은 그로부터 60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을 인정받고 있는 것이다.
전시 녹음들에서 일관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전 부분에 걸쳐 팽배하게 유지되는 긴장감과 깊디 깊은 심연과도 같은 어두움의 분위기이다. 1944년 12월 19~20일에 녹음된 베토벤 교향곡 제 3번 2악장, 1943년 6월 30일의 베토벤 코리올란 서곡 등의 유명한 전시 녹음들은 그와 같은 느낌들을 특히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유독 전시 녹음에 이러한 특유한 느낌들이 나타나게 되었는지의 해답은 지휘자 본인이 이 시기에 겪고 있었던 외적, 내적 갈등에 기인한 절망과 고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19세기 말의 교양있는 시민층에 속해있던 푸르트벵글러는 선천적으로 나치라는 존재 그 자체에 완전히 공감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독일 음악 예술을 대표하는 존재로 자타가 공인하던 그 자신의 위치와 그것이 가져다주는 자부심 그리고 사명감은 그로 하여금 발터나 클렘페러 등의 다른 음악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망명의 길을 택하는 것을 망설이게 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푸르트벵글러가 유일하게 안주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술과 정치는 별개" 라는 그 자신의 신념 하나 뿐이었다.
그러나 그 신념은 가혹한 환경 속에 놓인 연약한 관상 식물이나 다름없었다. 나치를 받아들일 수도, 그렇다고 독일을 등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예술과 정치가 전혀 다른 영역에 위치한다고 믿는 것은 자신의 색을 명확하게 드러내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현실에 안주하기에 급급한 중산층의 정치적 변명에 불과했다. 푸르트벵글러는 "회색인"으로 존재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회색인의 운명은 양 극단에 자리잡은 자들에게 휘둘리고 이용당하는 것 뿐이었다. 그러한 나락에 떨어진 예술가의 절망과 고뇌가 전시 녹음들에 한가득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은 세월이 흐른 지금의 우리들이 "회색인" 푸르트벵글러의 우유부단함과 그로 인한 잘못된 선택을 비판하기는 쉬운 일이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우리들 대부분도 푸르트벵글러와 비슷한 태도를 취하게 되기 십상일 것이다. 위대한 예술가가 가장 가혹한 시대 환경 속에서 택한 너무나도 평범하지만 눈물겨운 선택과 그것이 낳게 된 비극적인 결과가 평범한 사람들 모두의 마음 속에 불러일으키는 안타까움의 무의식적 공감대, 그것이 푸르트벵글러의 전시 녹음들이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 베토벤 교향곡 제 3번 Etc.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4.12.19~20.(Archipel):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전리품으로서 소련 모스크바 방송국에 보관되었던 푸르트벵글러의 전시 음원들은 60년대에 들어 소련 국영 레이블 멜로디야에서 LP화 되었다. 그 중 1944년 12월 19~20일의 베토벤 교향곡 제 3번은 미국의 해적 음반사 "우라니아"에 의해 서방 세계에 출시되었는데, 특유의 공격적이고 광포한 음향으로 명성을 얻었다. 염가 복각 전문 레이블 Archipel이 그 "우라니아" 초반 LP를 마스터로 하여 복각시킨 CD이다. 그냥저냥 들어줄만한 음질에 염가라는 매력때문에 집어들게 된 CD. 최근 출시된 멜로디야의 리마스터링한 푸르트벵글러 전시 녹음 시리즈의 동곡 녹음으로 교체를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는 중이다.

- 베토벤 교향곡 제 4번, "코리올란" 서곡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3.6.27~30.(일본 유니버셜): 2004년 푸르트벵글러 사후 50주년을 맞아 고인의 팬층이 두터운 일본에서 기념으로 냈던 일련의 세트들 중에 속해있는 녹음. 음원 자체가 43년 6월 27일과 30일에 있었던 두 개의 동곡 연주를 짜맞추기했기 때문인지, 왠지 또렷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는 맛은 약하다. 하지만 연주 그 자체는 베토벤 교향곡 제 4번에 대해 "일종의 쉬어가기" 라고 생각하는 기존 인식을 재고케 할만한 점이 있다. 1악장 도입부의 무겁고 어두운 긴장감이 밝은 분위기로의 전환이 이루어지는 이후 부분 전체에 걸쳐 숨겨진 배경으로서 깔려있는 듯한 느낌이 바로 그것이다.

- 베토벤 교향곡 제 5번, 제 7번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3.6.30./1943.11.3.(DG): 아마도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을 전시 녹음 음반일 듯 하다. 1987년 모스크바 방송국에 보관되어 있던 전시 녹음 음원 마스터 테이프들이 일련의 협상을 거쳐 독일로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 바로 그 마스터 테이프를 기본으로 복각한 음반이다. 음질 자체의 향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은 듯 하나,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놀라운 지휘 감각을 맛보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다. 카를로스 클라이버나 구스타프 두다멜 등이 20세기 후반 이후 녹음한 같은 커플링의 녹음들과 비교해보면 무척 재미있다. 푸르트벵글러의 음악 세계에 입문하려는 사람들이 반드시 거치게 되는 관문.

- 베토벤 교향곡 제 6번 Etc.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1944.3.19.(Melodiya): 러시아 국영 음악사 "멜로디야"에서 소련 시절부터 남아있던 푸르트벵글러 전시 녹음 음원들을 새로이 리마스터링해서 재출반한 일련의 전시 녹음 세트들 가운데 하나. 1944년 3월 19일날 방송용으로 녹음되었던 푸르트벵글러와 베를린 필의 전체 프로그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가장 상태 좋은 마스터 테이프가 보관되어 있다는 기존의 통설을 증명하듯이 비교적 좋은 음질을 들려준다. 압권은 역시 4악장의 폭풍우 장면으로, 그야말로 '휘몰아치는' 느낌이다. 함께 수록된 베버의 "마탄의 사수" 서곡, 라벨의 "다프니스와 클로에 모음곡 제 2번" 역시 듣는 맛이 쏠쏠하다.

- 베토벤 교향곡 제 9번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etc., 1942.3.22.(Melodya): 이 음반 역시 위의 제 6번과 마찬가지로 멜로디야의 새로운 리마스터링 세트들 중 하나이다. 흔히들 푸르트벵글러의 3대 "합창" 녹음으로 손꼽히는 42년, 51년, 54년 연주들 중 유일한 전시 녹음인데, "합창"이 조물주의 창조의 위대함에 대한 인간들의 찬사라기보다는 일종의 대혼란과 파국 그리고 그에 대한 공포를 묘사한다고 보는 일부의 시각에 부합하는 연주를 들려준다. 4악장 말미의 어마어마한 폭주, 20분에 육박하는 3악장, 1악장에서 등장하는 더블링한 팀파니의 굉음 등 감상자를 놀라게 하는 푸르트벵글러 특유의 스타일이 고도의 긴박감과 함께 어우러져 잊을 수 없는 감흥을 준다.

Posted by A.J.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