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체 양이 많다 보니 이번 포스팅 안에 끝까지 번역하기란 역시 무리이므로, 일단 이전 포스팅 직후의 내용에서 카라얀이라는 지휘자에 대해 세 소프라노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까지만 번역하고, 나머지는 또 다음 번에 차차 해나갈 작정이다.
전문 번역인도 아니고, 번역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 탓에 의역도 잦고 오역되었을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바이로이트 음악제와 연관된 불후의 명 음악가들의 소소한 뒷 이야기들을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졸역이나마 용기를 내어 시도해보았다.
길어서 가려둡니다
바르나이: 바이로이트에 데뷔했을 때 카라얀과 마찰을 일으킨 적이 있었어요. "트리스탄" 제 2막이었는데 나와 테너는 카라얀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요. 하필이면 그때 카라얀은 자아도취에 빠져 뜬구름을 잡는 거나 마찬가지인 상태에 있었는데, 어디가 첫 박이고 어디가 세번째 박인지도 알지 못할 정도였어요.
뫼들: 그리고 본인조차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 되면, 그는 원을 그리는 손동작을 취했지.
바르나이: 그래요. 그게 그가 자신이 느끼는 바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난 고통받았어요! 정말 신경에 거슬렸거든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두 동료가 빌란트 바그너에게 가서 말했죠. "이런 식으론 폰 카라얀 씨와 같이 일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 있었을 때, 나는 남편에게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비록 폰 카라얀 씨를 존경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상태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판이다, 차라리 그와 함께 일하지 않는게 낫겠다, 라고 편지를 쓴 적도 있지요. 누군가가 내 편지를 그(카라얀)에게 보여줬고, 그 후 그는 나를 10여년간 냉대했지요.
닐손: 맞아요. 그리고 그게 내가 브륀힐데 역을 위해 비엔나에 오게 된 원인이지요.
바르나이: 알아요.
닐손: 나도 그랬어요. 57년인가 58년일텐데 당신이 그렇게 된 것을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을 보고 나는 무척 놀랐죠. 그런 내막이 있었네요. 그는 사소한 것조차 잊어버리지 않았군요.
바르나이: 한 10년 쯤 지났을 때 폰 카라얀 씨가 잘츠부르크에서의 "엘렉트라" 공연을 위해 과거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나를 부르고 싶어 한다는 전화를 받았죠. 난 "누가 지나간 일을 다시 캐내고 싶어 할까요?" 라고 말했고 그로 인해 잘츠부르크의 "엘렉트라" 공연들에 출연하게 되었죠.
뫼들: 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바르나이: 그래도 좋은 일도 있었지요.
뫼들: 그래?
바르나이: 난 공연 중이든 총연습 중이든 나에게로 온 편지나 전보는 절대 읽지 않았어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죠. 나쁜 소식이 있다면, 그걸 듣고 싶지 않았고, 좋은 소식이 있다면, 나중에 들어도 되니까요. 총연습 중이었는데 분장실의 탁자 위에 붉은 장미로 가득한 부케 하나와 편지 한 통이 놓여져 있더군요. 난 편지는 한쪽 구석으로 밀어 놓고 들고 갈 것이 많으니 장미 부케만 가지고 가야겠다고 했죠. 그러자 내 분장사가 "바르나이 양, 편지를 읽어보시는게 어때요" 라고 하더군요. 내가 거절하자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하더군요. 그건 다음 시즌의 "엘렉트라" 재출연을 요청하는 계약서였어요. "잘 되었군!" 이라고 난 생각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다시 함께 일할 수 있었지요.
닐손: 카라얀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었어요. 그러나 극장에서 그와 함께 하는 것은 결코 환상적인 일이 안 되었지요. 그는 조명 기술자였어요. 우리는 눈먼 순례자들인양 우리들의 얼굴 위로 마구 쏟아지는 조명을 바라보며 배회해야 했죠. 그의 조명 기법을 좋아할 수만 있다면 참 다행이지요. 모두가 그에게는 매우 존경하는 태도를 취했어요. 나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보다 더 카라얀을 존경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내가 생각한 것을 말했죠. 한번은 그가 "닐손 양, 한번만 더 하지, 이번에는 더 심혈을 기울여서.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잘 알거야. 거기엔 당신의 지갑이 자리잡고 있지."라고 말했죠. "최소한 한 가지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군요, 폰 카라얀 씨." 라고 대답했지요. 내 생각엔 그가 그걸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많은 것이 그런 식이었어요. 그는 우리들을 "반지" 리허설을 위해 오전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에 소집했는데, 우리는 30분, 45분, 혹은 그 이상을 기다리기 일쑤였죠. 그러고 있으면 그의 비서가 와서 말하죠, "폰 카라얀 씨는 시간을 내실 수가 없으십니다. 저녁 7시에 다시 와 주세요." 그리고 변경된 시간에도 그는 또 45분 더 늦게 나타났지요. 나는 그가 그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고 그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신들의 황혼"을 위해 82번의 조명 리허설과 단 한번의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가진 적도 있었지요! 참 경우가 없는 짓이었지요. 그가 있을 때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멋진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전화통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에 매달리기 일쑤였고, 나는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잘해야 50퍼센트나 혹은 그 이하로 대충 넘어가는 것 같았죠. 그도 결국 한 인간에 불과하고, 모든 걸 다 고려할 수는 없었지요. 하지만 그는 그걸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모든걸 완벽히 통제하기를 원했어요. 딱한 일이죠.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소인배였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뫼들: 나는 그를, 어디보자, 51년인가, 아니, 52년에 라 스칼라에서 "피델리오"를 공연할 때 만났지. 난 그가 당신들이 묘사한 것과 정 반대였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 사이엔 제법 오랜 세월이 자리잡고 있구먼.
닐손: 그럴수가!
뫼들: 믿을 수가 없지?
닐손: 그렇네요.
뫼들: 그는 싹싹하고 친근한 사람이었고, 친절했지. 빈트가센이 목이 쉬었을 때가 생각나는데, 카라얀이 이렇게 말했지, "높은 음을 낼 수가 없는 모양인데, 돌아서요. 그러면 내가 오케스트라로 당신의 상태를 가려주리다."
닐손: 빈트가센이 노래를 못 부르면 당연히 그가 돈을 못 받으니까 그랬겠죠.
뫼들: 믿어지진 않겠지만 그는 진짜 "친구"였어. 밀란에서 그는 우리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는걸.(경악하는 닐손!) 연습을 함께 하고 있을 때, 그는 피아노로 지휘자용 악보를 연주하기도 했는데, "트리스탄"이었지! 4년간 그는 완벽하게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행동했었고, 독일어로 "동지"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지. 당신네들이 경험했던 것과는 달리. 당신들이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아. 하지만 그 전에는 그 사람 그렇지 않았어. 무대 연출도, 조명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게 없었지. 그리고 그의 무대 연출은 매우 음악적이었고, 모든 부분에서 음악에 충실했는데, 우린 정말 감명받았었지. 뭐 그래도 빌란트 만큼은 안 되었지만!
뫼들: 그리고 본인조차 어찌할 바를 모를 지경이 되면, 그는 원을 그리는 손동작을 취했지.
바르나이: 그래요. 그게 그가 자신이 느끼는 바를 표현하는 방식이었죠. 하지만 난 고통받았어요! 정말 신경에 거슬렸거든요.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두 동료가 빌란트 바그너에게 가서 말했죠. "이런 식으론 폰 카라얀 씨와 같이 일할 수 없습니다." 미국에 있었을 때, 나는 남편에게 이 문제에 대해 얘기하기도 하고, 비록 폰 카라얀 씨를 존경하기는 하지만 이러한 상태에서는 도저히 그럴 수가 없을 판이다, 차라리 그와 함께 일하지 않는게 낫겠다, 라고 편지를 쓴 적도 있지요. 누군가가 내 편지를 그(카라얀)에게 보여줬고, 그 후 그는 나를 10여년간 냉대했지요.
닐손: 맞아요. 그리고 그게 내가 브륀힐데 역을 위해 비엔나에 오게 된 원인이지요.
바르나이: 알아요.
닐손: 나도 그랬어요. 57년인가 58년일텐데 당신이 그렇게 된 것을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을 보고 나는 무척 놀랐죠. 그런 내막이 있었네요. 그는 사소한 것조차 잊어버리지 않았군요.
바르나이: 한 10년 쯤 지났을 때 폰 카라얀 씨가 잘츠부르크에서의 "엘렉트라" 공연을 위해 과거를 언급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나를 부르고 싶어 한다는 전화를 받았죠. 난 "누가 지나간 일을 다시 캐내고 싶어 할까요?" 라고 말했고 그로 인해 잘츠부르크의 "엘렉트라" 공연들에 출연하게 되었죠.
뫼들: 안 할 수도 있었을 텐데......
바르나이: 그래도 좋은 일도 있었지요.
뫼들: 그래?
바르나이: 난 공연 중이든 총연습 중이든 나에게로 온 편지나 전보는 절대 읽지 않았어요. 마음의 평온을 유지하기 위해서였죠. 나쁜 소식이 있다면, 그걸 듣고 싶지 않았고, 좋은 소식이 있다면, 나중에 들어도 되니까요. 총연습 중이었는데 분장실의 탁자 위에 붉은 장미로 가득한 부케 하나와 편지 한 통이 놓여져 있더군요. 난 편지는 한쪽 구석으로 밀어 놓고 들고 갈 것이 많으니 장미 부케만 가지고 가야겠다고 했죠. 그러자 내 분장사가 "바르나이 양, 편지를 읽어보시는게 어때요" 라고 하더군요. 내가 거절하자 다시 한번 간곡히 요청하더군요. 그건 다음 시즌의 "엘렉트라" 재출연을 요청하는 계약서였어요. "잘 되었군!" 이라고 난 생각했고 그때부터 우리는 다시 함께 일할 수 있었지요.
닐손: 카라얀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건 정말 환상적인 일이었어요. 그러나 극장에서 그와 함께 하는 것은 결코 환상적인 일이 안 되었지요. 그는 조명 기술자였어요. 우리는 눈먼 순례자들인양 우리들의 얼굴 위로 마구 쏟아지는 조명을 바라보며 배회해야 했죠. 그의 조명 기법을 좋아할 수만 있다면 참 다행이지요. 모두가 그에게는 매우 존경하는 태도를 취했어요. 나는 왜 다른 사람들에게 하는 것보다 더 카라얀을 존경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어요. 내가 생각한 것을 말했죠. 한번은 그가 "닐손 양, 한번만 더 하지, 이번에는 더 심혈을 기울여서. 당신은 스스로의 마음을 잘 알거야. 거기엔 당신의 지갑이 자리잡고 있지."라고 말했죠. "최소한 한 가지는 우리가 공유하고 있군요, 폰 카라얀 씨." 라고 대답했지요. 내 생각엔 그가 그걸 농담이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많은 것이 그런 식이었어요. 그는 우리들을 "반지" 리허설을 위해 오전 10시에서 10시 30분 사이에 소집했는데, 우리는 30분, 45분, 혹은 그 이상을 기다리기 일쑤였죠. 그러고 있으면 그의 비서가 와서 말하죠, "폰 카라얀 씨는 시간을 내실 수가 없으십니다. 저녁 7시에 다시 와 주세요." 그리고 변경된 시간에도 그는 또 45분 더 늦게 나타났지요. 나는 그가 그저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려고 그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신들의 황혼"을 위해 82번의 조명 리허설과 단 한번의 오케스트라 리허설을 가진 적도 있었지요! 참 경우가 없는 짓이었지요. 그가 있을 때 함께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멋진 일이었어요. 하지만 그는 전화통과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일에 매달리기 일쑤였고, 나는 그가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잘해야 50퍼센트나 혹은 그 이하로 대충 넘어가는 것 같았죠. 그도 결국 한 인간에 불과하고, 모든 걸 다 고려할 수는 없었지요. 하지만 그는 그걸 인정하기를 거부했고, 모든걸 완벽히 통제하기를 원했어요. 딱한 일이죠. 그는 위대한 예술가였지만, 소인배였어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뫼들: 나는 그를, 어디보자, 51년인가, 아니, 52년에 라 스칼라에서 "피델리오"를 공연할 때 만났지. 난 그가 당신들이 묘사한 것과 정 반대였었다고 말해주고 싶어....... 그 사이엔 제법 오랜 세월이 자리잡고 있구먼.
닐손: 그럴수가!
뫼들: 믿을 수가 없지?
닐손: 그렇네요.
뫼들: 그는 싹싹하고 친근한 사람이었고, 친절했지. 빈트가센이 목이 쉬었을 때가 생각나는데, 카라얀이 이렇게 말했지, "높은 음을 낼 수가 없는 모양인데, 돌아서요. 그러면 내가 오케스트라로 당신의 상태를 가려주리다."
닐손: 빈트가센이 노래를 못 부르면 당연히 그가 돈을 못 받으니까 그랬겠죠.
뫼들: 믿어지진 않겠지만 그는 진짜 "친구"였어. 밀란에서 그는 우리들과 함께 점심을 먹기도 했는걸.(경악하는 닐손!) 연습을 함께 하고 있을 때, 그는 피아노로 지휘자용 악보를 연주하기도 했는데, "트리스탄"이었지! 4년간 그는 완벽하게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행동했었고, 독일어로 "동지"라고 표현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지. 당신네들이 경험했던 것과는 달리. 당신들이 말한 것이 진실임을 알아. 하지만 그 전에는 그 사람 그렇지 않았어. 무대 연출도, 조명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다른 사람들과 별 다를게 없었지. 그리고 그의 무대 연출은 매우 음악적이었고, 모든 부분에서 음악에 충실했는데, 우린 정말 감명받았었지. 뭐 그래도 빌란트 만큼은 안 되었지만!
Posted by A.J.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