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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말러", "버짓 말러" 등의 별명을 지니고 있는 엘리아후 인발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 전집.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이 바로 1986년의 제 7번 "밤의 노래" 다. 서두에서 언급한 별칭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발의 말러는 은사인 번스타인이 같은 레퍼토리에서 보여주는 과도한 낭만성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광기, 광폭, 대혼란, 폭주 등등, 일부 말러 팬들이 병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표현들은 인발의 말러 해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도 어쨌던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확실히 비주류 중견 지휘자임에는 분명한 인발. 베를린 필이니 빈 필이니 하는 호화찬란하고 뻑적지근한 이름값들을 자랑하는 일류 연주단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인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거기에다 손쉽게 이목을 끌 수 있는 자극성과 강렬함보다는 일견 수수하게 들리는 견실함과 명료함을 택한 해석. 소위 말하는 인기있는 말러 연주들 사이에 인발의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은 이상의 이유들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7번 녹음에서만큼은 인발의 해석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절묘호사"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낳았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동곡에 있어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아바도와 시카고 교향악단의 84년도 동곡 구 녹음과 비교해 보면, 비록 아바도가 만들어낸 것과 같은 윤기넘치고 매혹적인 음색과 악상 표현은 없지만, 인발은 그 대신 '파삭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명료하게 보여주는 이지적인 냉철함으로 감상자의 귀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이처럼 말러라고 해서 꼭 반쯤 정신질환에 걸린 것처럼 들려야만 할 이유는 전혀 없음을 훌륭하게 웅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발의 말러는 가치를 지닌다. 이지적인 냉철함, 그것은 번스타인의 자기도취, 텐슈테트의 처절함, 아바도의 세련된 낭만성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무게감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몽환적인 밤의 세계를 담고 있는 악상들을 이토록 무덤덤하고 절제된 시각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그려낼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이 음반은 숱한 말러 녹음들 중에서도 그 나름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ps: "이지적인 냉철함"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불레즈의 말러 해석과 유사하다고 생각치 않았으면 한다. 실제로 들어보면 알겠지만 불레즈와 인발은 상당히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불레즈의 작곡가로서의 자세에 바탕을 둔 이론과 분석에 일차적으로 의지하는 표현과는 달리, 인발은  지휘자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직감에 바탕하여 그 나름의 "이지적인 냉철함"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표현력이 부족한 탓으로 확연히 그 차이를 묘사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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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2/20 01:56 2008/02/20 01:56


말러의 일곱번째 교향곡은 작품의 2, 4악장에 붙여진 "밤의 노래"라는 별칭을 그대로 부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작품의 4악장까지는 그 부제가 상당히 그럴싸하게 느껴집니다. "밤"이라는 단어와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는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의미로 다가오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밤"의 특성을 잘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밤"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한밤중의 어둠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고요하기 짝이 없는 적막한 밤을 홀로 보내게 될 때는 고독함이나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죠. 때로는 은은한 달빛이 함께하는 밤의 풍경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찾아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밤이라는 시간은 휴식과 수면을 통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말러의 교향곡 7번은 이처럼 복잡다양한 밤의 면모를 그 안에 뭉뚱그려 담아놓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처음 이 작품을 듣게 되면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일관성있게 제시되는 '줄거리'가 없습니다.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몽환적인 느낌의 "밤"의 이미지들 뿐이고, 그들 상호간에는 어떠한 논리적 유기성이나 원인관계같은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순수 이미지 위주의 음악적 화법은 작품 발표 당시부터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매우 진보적이라고 평가하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5악장입니다. 곡의 시작부터 네번째 악장까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몽환적 이미지의 무차별적 나열에 뒤이어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5악장 도입부의 팡파르는 실로 쌩뚱맞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활기에 가득찬 밤의 모습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그전 악장까지 제시되고 있던 이미지들과 5악장에서 제공되는 이미지 사이의 간격은 너무 넓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5악장이 밤의 끝자락, 그러니까 점차 동이 터오면서 어둠이 밀려나가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추측해봅니다만......

이와 같이 다채롭고도 무질서한 "밤의 노래"와 가장 궁합이 맞는 지휘자를 꼽으라면,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거론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소개드렸던 베를린 필과의 1번 녹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바도는 말러 교향곡들 속에 내포된 추상적 이미지 하나 하나를 매우 세심한 부분에까지 그러면서도 무리하는 기색없이 상큼하게 묘사해냅니다. 그러한 그의 놀라운 지휘력은 7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그는 말러 교향곡 7번에 관해 두 개의 음반을 남기고 있는데, 여기 소개하고 있는 시카고 심포니와의 '구반'과 2001년 녹음된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신반'은 모두 7번을 대표하는 명반들로서 아주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요. 아바도의 '이지적인 열정'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두 음반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만족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제가 굳이 '구반'을 택한 것은, 단지 '신반'보다 싸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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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5/12/09 22:08 2005/12/09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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