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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이 아닌 이상 "마이스터징거"를 완전히 이해하고 즐기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있다. 바그너의 이 악극은 그들의 입장에서는 마치 한국인에게 있어서 "아리랑"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독일인' 또는 '독일 민족'이라는 근대적 개념 및 범주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다른 범주와는 동질성의 측면에서 확연한 구분을 짓는 기준들 중 하나가 바로 이 작품인 것이다.

물론 단순히 중세 독일 지방의 자유도시에서 벌어지는 축제와 사랑의 대소동이라는 표면상의 모습으로만 "마이스터징거"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 곳곳에서 보여지는 역사적, 사회적 변화 과정들의 암시 내지는 상징들을 생각하면, 결코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단언하건데 이 작품은 "독일 민족의 탄생"이라는 부제를 붙여줘도 아무 문제가 안될 것이다.

그래서 "마이스터징거"는 어렵다. 길이 자체도 길거니와, 대체 이게 왜 그렇게 우스운지 또 감동적인지 통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예전에 어느 한국 원로 바그네리안이 쓴 바이로이트 축제 감상기에서, 이 작품을 보고 있는데 옆에 앉은 독일인들은 모두 자지러지는데 자기 혼자만 어색한 미소만 띄우며 앉아 있을 수 밖에 없더라는 구절을 본 적이 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마이스터징거"를 들을 때의 따분함과 힘겨움이 나의 공력과 경험이 일천한데서 오는 증상이라고 자학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실비오 바르비조가 지휘한 1974년도 바이로이트 실황 "마이스터징거"는 그동안 바이로이트 실황의 "마이스터징거" 음반 중에서는 가장 높은 평가를 받아왔는데, 지금까지 쓴 이야기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독일 민족', '독일 정신' 등이 어떻게 형성되는지에 대한 고찰을 바탕에 무겁게 드리우는 일 없이, 순수하게 작품의 내용 그 자체에 맞추어 사랑의 우여곡절과 축제의 흥겨움 만을 전면에 도출시켰기 때문에, 굳이 독일인이 아니어도 이 연주가 전달하려는 것을 완전히 이해하고 즐기는 데에는 무리가 없기 때문이다.

이 실황 음반은 순수하게 연주 그 자체로만 따지고 보면 범작 이상이 되기 힘들다. 성악가들의 기량만을 평가한다면 아마도 모든 바그너 음반들을 모아놓고 순위를 매겼을 때 상당히 하위권에 가게 될런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라얀을 필두로 하는 게르만계 지휘자들의 방식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따스함과 자연스러움을 지닌 바르비조의 해석과 그에 맞춘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성악 부분의 단점을 메꾸면서 동시에 작품의 배후에 있는 각종의 진지하고 복잡한 배경들을 신경쓰이지 않게끔 희석 또는 융해시킴으로써 사랑과 축제라는 표면 상의 이야기만을 두드러지게 하는데 성공했다.

이 음반에 관한 모 인터넷 클래식 동호회 사이트 10자평에서  "한번에 다 들을 수 있었던 마이스터징거", "흡입력이 강했다", "상당히 즐겁게 들었다"라는 얘기들이 나오는 것은 아마도 이러한 이유에서라고 생각해본다. 개인적으로는 특출나게 집중하거나 강조되는 부분이 거의 없어서 되려 아쉬웠다. 바르비조의 따스하고 자연스러운, 즉 쾌적한 오케스트라 지휘는 "마이스터징거"가 진지하게 해석될 때 광채를 발하는 일부의 미덕들까지도 상당히 흐릿하게 만들어버린게 아닐까. 대미를 장식하는 작스의 "신성 로마 제국 예술 찬가"마저도 무심하게 흘러가버리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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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9/23 11:45 2008/09/23 11:45

난 바그너 몇 개나 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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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좋게 말해서 클래식 '마니아', 까대는 표현으로 "클래식 덕후"의 세계로의 장도를 시작하게 만든 작곡가는 바그너란 말이지. 이 블로그에서 본격적으로 클래식을 다루면서 처음으로 '파고 들었던' 것도 바그너의 음반들이었던 것 같고.

자 그럼 그동안 나름 "바그네리안"이라고 자칭해 왔던 것 같은데, 과연 내가 제대로 첨부터 끝까지 다 듣고 다 본 바그너 주요 작품들(소위 말해서 '바이로이트 프로그램') 전곡 연주는 몇 개나 될까? 어차피 실제 공연은 단 한번도 안 가봤으니까 그건 생각하지 말고, 음반 아님 영상물 아님 음원들로 한번 계산해보도록 하자.

편의상 지휘자들 이름만 명시해보기로 하면-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 페렌츠 프리차이, 칼 뵘
탄호이저 = 숄티, 자발리쉬
로엔그린 = 켐페, 슈나이더
트리스탄과 이졸데 = 칼 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 카라얀(51), 카라얀(70), 바르비조
니벨룽의 반지 = 카일베르트, 칼 뵘, 자발리쉬, 틸레만(2008 바이로이트 실황 생방송 - 듣는 중), 바렌보임
파르지팔 = 크나퍼츠부쉬, 바렌보임, 가티(2008 바이로이트 실황 생방송)

언뜻 보면 많아 보이지만, 그 동안 알게 된 국내 또는 국외 바그네리안들의 어마어마한 기록들에 비하면 이건 뭐 완전 새발의 피도 안되는구만. 박종호 선생님 책 보니까 일본의 어떤 바그네리안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만 70개 가지고 있고, 최근 열심히 바그네리안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아가고 있는 한 청소년도 goclassic 디스코그래피 200자 보니까 전집 음반들 왕창 사고 있던데. 파르지팔의 경우엔 그것만 엄청나게 사고 듣고 파 들어간 '그분'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부끄럽고.

게다가 최근에는 솔직히 말해 바그너보다는 푸치니가 더 관심가는 오페라 작곡가가 되어버렸어. 순수한 수집욕의 측면에서도 이젠 바그너라면 별 감흥도 안 들고(그 데카 33장 버짓 박스 때문에 굳이 빡세게 노력할 의미도 이유도 잊은 듯). 그나마 곧 발매된다는 뵘의 바이로이트 실황 "명가수"하고, 계속 나오고 있는 바이로이트 실황 DVD들만 좀 생각이 날락말락하지만 돈 없다면 말짱 황이겠지.

그러므로 결론.
어디가서 바그네리안입네, 바그너 음악 좀 들었네 소린 하지 않는게 좋겠다. 하긴 지금까지도 대놓고 공개적으로 그런 얘기 해댄 일은 없는 것 같지만.......아마도.
이미 쓴 글들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지...... 앞으로 혹여 바그너 관해서 음반평이든 뭐든 쓰게 된다면 예전보다 훨씬 겸손해져야겠다는 생각도 든다.

ps: 근데 많이 사서 많이 들으면 그보다 적게 사서 적게 들은 사람보다 무조건 '한수 위'라고 할 수 있는 걸까? 다 쓰고 나니 반발심인지 얄랑궂은 자존심 쪼가리인지 뭔지가 그런 의문을 품게 만드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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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8/19 23:27 2008/08/19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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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은 뭔가 변화의 기운이 본격적으로 감지된다. 우선 그 허접했던 인터넷 홈페이지도 세련되게 바뀌었고, 거기다 사상 최초로 인터넷 생방송으로 "뉘른베르크의 명가수" 초연 실황을 중계까지 해주는 등, 기존의 구태의연한 모습을 벗어나고자 하는 움직임이 뚜렷이 느껴진다.

"명가수" 생중계 홈페이지의 정보에 따르면 7월 27일 오후 3시 45분(독일 시간)부터 시작되는 초연 실황을 전 세계의 바그네리안들에게 대역폭 인터넷 통신망을 통해 상당한 수준의 화질과 128Kbps의 음질로 제공한다고 한다. 거기다가 이 생중계의 내용에는 막간에 무대 뒤의 상황을 실황으로 중계하고, 연출을 맡은 바그너 가의 차세대 기수 카타리나 바그너와의 온라인 대담도 제공되는 등, 바그네리안이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부가가치가 붙어있다.

물론 이 포스팅을 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는 다 물 건너간 얘기지만, 그래도 8월 2일(독일 시간)까지는 이미 온라인 방송이 나간 모든 영상을 계속해서 서비스해준다고 한다. 하지만! 물론 공짜는 아니다. 지금까지 주절거린 모든 꿈같은 이야기들을 실제로 체험하기 위해서는 49유로를 지불해야만 한다.

핫핫하...... 현 환율로 7만 8천원 선이다. ㅠ_ㅠ 난 어떡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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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8/01 00:01 2008/08/01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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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의 사진은 1952년 바이로이트에서 촬영된 것으로, 왼쪽부터 차례대로 빌란트 바그너, 이졸데로 분한 마르타 뫼들, 그리고 카라얀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인터넷 서핑 중에 우연히 접하게 된 이 사진에 자극받아, 2년 전에 그 방대한 양 앞에 좌절하여 그만두었던 번역에 다시 도전해본다.(A4 9장이 아니라 14장이었다)

원체 양이 많다 보니 이번 포스팅 안에 끝까지 번역하기란 역시 무리이므로, 일단 이전 포스팅 직후의 내용에서 카라얀이라는 지휘자에 대해 세 소프라노가 이야기를 나누는 부분까지만 번역하고, 나머지는 또 다음 번에 차차 해나갈 작정이다.

전문 번역인도 아니고, 번역의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 탓에 의역도 잦고 오역되었을 가능성도 농후하지만, 바이로이트 음악제와 연관된 불후의 명 음악가들의 소소한 뒷 이야기들을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 졸역이나마 용기를 내어 시도해보았다.

길어서 가려둡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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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2/08 02:06 2008/02/08 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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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고사가 끝난 직후의 휴식기를 이용해서, 사놓은 지 한 달이 넘도록 감상하지 못했던 바렌보임과 하리 쿠퍼의 바이로이트 (유사)실황 "신들의 황혼" DVD를 보았습니다. 원래는 학교 내 영상동아리의 감상실을 빌려서 볼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날씨도 춥고 무엇보다도 그 넓은 대형 감상실의 와이드 스크린 앞에서 4시간 넘게 혼자 우두커니 앉아 오페라 DVD를 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면 뭐라고 말할지가 두려워 그냥 집에서 컴퓨터를 이용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슬픈 이야기는 이쯤 해두고, 영상물을 끝까지 보고 난 직후에 느낀 것은 일단은 "끝났구나"라는, "반지" 전 싸이클을 섭렵하고 나면 언제나 느끼는 묘한 안도감이었습니다. 아무래도 내용의 길이가 14시간에 육박하는 초장편 악극이 되다 보니, 감상 도중에도 이따금씩 정신이 혼미해지거나 상당한 압박감을 느끼는 일이 있게 되지요. 요즘의 영화, 드라마, 만화, 애니메이션 등의 매체들은 바쁘기 그지없는 현대인들의 사정을 고려하여 되도록 짧은 시간 내에 최대의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배려하느라 고심하는데, 바그너 영감께선 19세기의 사람이신지라 그런건 전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덕분에 21세기의 감상자들만 반죽음 내지는 초죽음이 되는 거지요. 오죽하면 "바그너의 작품이 감상자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너무 오랜 시간동안 상연되는 탓에 피곤의 극치에 이른 감상자가 비판적 사고의 능력을 잃기 때문이다."라는 블랙 유머가 있겠습니까. 그러니 "신들의 황혼" 3막의 막이 떨어지는 순간이 되면 일단은 안도의 한숨부터 쉬고 보는 겁니다. 용케도 버텼구나, 라는 심정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요.

이런 생고생을 해가면서까지 "반지"를 보는 이유가 뭐냐, 라고 물으신다면 사실 명쾌하게 답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흡연자에게 몸에 해롭다는 걸 알면서도 왜 담배를 피우는가, 하고 질문하는 상황과 유사하달까요. 굳이 설명을 해보려는 헛된 노력을 해보자면, 적어도 저의 입장에서는 한 세계의 멸망이라는 거대하고 심각한 주제가 음악과 연극의 결합이라는 방법을 통해 구현되는 것을 바라보면서 느끼는, 커다란 규모의 카타르시스의 정화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그런 것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무엇보다도 "신들의 황혼" 마지막 순간의 대 클라이맥스가 주는 카타르시스의 정화 효과는 한번 경험하게 되면 절대 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최종적인 파국"으로 인해 일순간에 사라져가는 세계를 지켜보며 느끼는 감정의 강렬함이 워낙 큰 탓입니다.

그런데, 이 영상물에서 연출가는 그처럼 큰 감정의 분출을 일으키는 결말부의 처리에 있어서 "파국"을 통한 절대적인 해결을 명쾌하게 보여주지 않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엉뚱한 장면을 구성함으로써 되려 감상자로 하여금 의문에 빠지게 만듭니다. 거대한 불길이 신들의 전당을 덮치는 순간을 TV를 통해 지켜보는 사람들과, 그들의 모습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고 있는 알베리히, 그리고 그런 알베리히의 앞을 한 쌍의 소년 소녀가 조그마한 손전등으로 자신들의 발 앞을 비추면서 지나간 직후 막이 떨어집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의미인지, 한 번의 감상 만으로는 도저히 알 길이 없습니다. 연출자 하리 쿠퍼는 과연 무슨 의도로 그런 결말을 보여주었던 것일까요? 이와 같은 당혹스러운 결말 때문에, 뵘이나 자발리쉬 등의 "반지" 전 싸이클을 들은 직후 느꼈던 카타르시스의 정화를 통한 만족감은 이번에는 솔직히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반지"의 세계가 결정적인 파국을 맞아 멸망했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지경입니다. 그 때문에 바렌보임과 쿠퍼의 "반지" 바이로이트 (유사)실황 영상물들은 아무래도 처음부터 끝까지 몇 번 더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만, 그럴 여유는 당분간 전혀 없을 것 같으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대충 이 정도로 바렌보임과 쿠퍼의 바이로이트 (유사) 실황 "신들의 황혼" 을 본 소감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첨언하자면, 결말이 준 불만족스러움과는 별개로 연주 수준과 가수들의 연기는 정말로 만족스러웠습니다. 무엇보다도 강병운 교수님의 하겐을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저 음흉한 흉계를 꾸미는 야수같은 악당이 아니라, 아버지 알베리히 때문에 억지로 떠밀린 숙명에 절망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연료삼아 야망의 불길을 활활 태우는 용맹과 지략을 고루 갖춘 전사라는, 제가 언제나 상상해오고 있던 "반지"의 하겐 이미지에 매우 근접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80년대 "영웅본색" 등의 홍콩 느와르 영화를 연상시키는 복장의 덕도 좀 보신 것 같습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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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12/08 16:07 2006/12/08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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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타먼트의 1955년 "반지" 바이로이트 실황물 그 두 번째, "발퀴레"입니다. 출시 자체는 올해 중순 쯤에 이루어졌지만 국내 수입은 얼마 전에야 이루어졌습니다. 그 동안 영국 아마존에 주문 넣을까 말까를 늘 고민해왔는데 기다린 보람이 있다고 해야할 것 같군요. 왠만하면 박스물은 영국 아마존에서 사는 편이 더 싸게 먹히는 경우가 태반인데 테스타먼트의 오페라 박스물은 유일한 예외입니다. 거기서 주문하나 여기 수입되는 걸 사나 가격 상의 차이가 그다지 크게 나지 않는 탓이죠.

"지크프리트" 때도 느꼈지만 정말 52년 전의 녹음이라고 하기에는 믿기지 않을 만큼 음질은 좋습니다. 물론 요즘의 신보에 비하면 아무래도 무리가 따르지만, 이것과 역시 같은 레이블에서 나온 동년도의 "방황하는 네덜란드인" 실황을 제외한 다른 50년대의 바이로이트 실황 음반들과 비교하면 이건 거의 뭐 하늘과 땅 차이랄까요. Mono, 그것도 가끔씩은 온갖 잡음이 끼어들어간 몇몇 음반들에 비하면 테스타먼트의 55년도 "반지" 실황물은 '그날 밤의 바이로이트 극장에 앉아있는 것 같다'는 "그라모폰"의 입발린 칭송에 걸맞는 Stereo입니다.

문제는 수록된 공연의 질인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발퀴레"는 좀 실망스러웠습니다. 가수들보다는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쪽에 그 이유가 있는 듯 합니다. 카일베르트는 상당히 빠른 템포로 시원시원하게 달려나가는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때로는 약간 건성이다 싶을 정도로 무심히 악절들을 흘려보내고 있는게 문제입니다. 뵘의 1967년도 실황 "발퀴레"도 속도감의 측면에서는 이 음반에 뒤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 쪽은 듣는 이를 강력히 묶어두는 응집력 내지는 집중력이 있었는데 카일베르트의 "발퀴레"에서는 그런 것이 별로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고, "반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몇몇 장면들 - 1막의 클라이맥스, 2막 후반의 "죽음의 예고" 장면, 3막 전주곡에서부터 보탄이 등장하기 직전까지의 부분 그리고 무엇보다도 3막 막판의 "보탄의 이별" 장면 - 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무덤덤하게 지나가니 감상자 입장에서는 김이 팍 새는 기분이었습니다. 감정이 좀 무르익겠다 싶으면 벌써 지나가버리는 판이라, 음악에 몰입하기가 정말 힘이 듭니다. "그라모폰"의 리뷰가 이 음반에 보낸 찬탄은 지금의 제게는 그야말로 "거품" 내지는 "립 서비스" 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지만 "꿈의 호화 캐스팅"이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면면들로 구성된 가수진 덕분에, 그나마 본전 생각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호터의 보탄은 왜 그가 "영원한 보탄"이라고 불리는지를 납득하기에 충분할 정도였고, 바르나이도 라몬 비나이도 그들이 지니고 있는 명성에 걸맞는 호연을 들려주었습니다. 문제는 카일베르트와 악단의 '무덤덤한' 연주 때문에, 가수진들과 연주 사이에 왠지 모를 경계가 놓여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입니다. 가수들은 좀 더 감정을 실어 보고 싶은데 정신없이 달려가고 있는 연주가 그것을 방해한다는 느낌이랄까요.

써놓고 나니 악담 투성이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이상과 같은 평가가 단견일 가능성은 크리라 생각합니다. 카일베르트 본인이 제 리뷰를 읽는다면, "55년도 "반지"가 모두 발매된 다음에도 이런 혹평을 늘어놓을 수 있을까?"라고 빈정거릴 지도 모르겠습니다. "라인의 황금"에서부터 "신들의 황혼"까지를 차례대로 쭉 들어본다면, "발퀴레"에서 제가 느꼈던 연주의 무덤덤함 내지는 무성의함이 "반지"라는 거대한 작품 전체에서 그 나름의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는, 지휘자의 심오한 예술적 판단의 결과물로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발퀴레"를 독립적인 작품으로 인식한다면 이 음반은 아무래도 제 성에 안 차는 구석이 한 두군데가 아니지만, "니벨룽의 반지"라는 대서사시의 한 부분으로 관점을 달리해서 볼 때까지는 섣불리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른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루 빨리 "라인의 황금"과 "신들의 황혼"까지 마저 발매되어, 순서대로 전체를 감상해보는 때가 오기를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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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11/18 01:22 2006/11/18 01:22

바렌보임의 바이로이트 실황 "반지" DVD, 그 세번째 발매작인 이 "지크프리트"에 대해서는 길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냥 보면 되는 겁니다! 이전에 발매된 동 프로덕션의 "라인의 황금"이나 "발퀴레"에서 느꼈던 일말의 아쉬움 내지는 불만감 같은 것은 느낄 겨를도 이유도 전혀 없습니다. 바그너 작품을 담은 영상물 중에서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을 찾는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의 상황에서는 불가능하다고까지 생각합니다.

가수들도 혼신의 힘을 다하여 가창과 표현의 한계에 도전하듯이 노래하고, 바렌보임의 지휘 역시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하며, 쿠퍼의 연출은 시각적인 즐거움마저 가득 채워줍니다. 너무 칭찬만 늘어놓고 있는게 아니냐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제게는 모든 측면에서 고려해볼 때 더없이 만족스러운 영상물입니다. 특히 톰린슨의 보탄과 클라크의 미메는, 지금까지 접했던 모든 "지크프리트" 음반 및 영상물들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가창과 연기를 보여주었습니다.

톰린슨이 묘사한 보탄은 모든 일을 자신의 의도대로 끌고 나가려고 노력하면서도 동시에 이율배반적으로 냉소적인 허무주의자로서의 태도를 고수하는 인물입니다. 아직은 세계도 영웅들도 자신의 힘과 의지에 복종하고 있지만, 머지않아 두려움을 모르는 젊은 영웅이 그 모든 것을 뿌리치고 새로운 세계를 열 것이라는 사실을 수긍하며 체념섞인 기쁨을 토로하는 보탄의 모습은 정말로 매력적이었습니다. 한동안 "지크프리트"에서의 지크프리트에 밀려 가장 좋아하는 바그너 타이틀 롤의 자리를 잃었던 보탄입니다만, 이 영상물 덕분에 다시 한번 보탄에 대한 애정도가 급상승하는 것을 느낍니다.

"라인의 황금"에서는 로게 역을 맡았던 클라크의 미메 역시 훌륭하기 그지 없습니다. 제딴에는 나름 영리하다고 자부하지만 결국 '헛똑똑이'에 불과한, 소악마처럼 비뚤어져버린 난쟁이 대장장이의 모습을 뛰어난 솜씨로 잘 묘사해내는 클라크의 가창과 연기는 과거 신 바이로이트 시대의 위대한 미메들과 비교해봐도 꿀릴 것이 없을 정도입니다. 클라크는 뵘의 1966/67 바이로이트 실황 "반지"에서 동역을 맡았던 볼파르트와 기본적으로는 유사한 듯 하지만, 그보다 좀 더 희극적인 면에서나 비극적인 면에서나 한발자국 정도 더 나아간 해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가수들도 각자 흠잡을 데 없이 뛰어난 가창과 연기를 보여주고 있고, 그것을 바렌보임의 능숙하고도 치밀한 지휘가 잘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쿠퍼의 무대 연출 역시 2막에서 용이 기대보다는 보잘것없이 표현된 것을 제외하면(하긴, 용이 용답게 느껴지는 "지크프리트"가 현실의 무대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음악과 대본이 의미하는 바를 잘 살려내려고 고심한 흔적이 보이는 준수한 것이었습니다. 뵘의 1966년 바이로이트 실황 "트리스탄과 이졸데" 음반은 극과 음악의 유기적이고 완벽한 합일을 추구하는 바그너의 악극 이론이 꿈꾸는 이상에 매우 근접한 성과를 보여주었다고 평가받습니다. 이 영상물 또한 그와 동일한 평을 받아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음악적으로도 연극적으로도 매우 우수한 동시에, 두 분야가 유기적으로 조화를 이루며 잘 결합되어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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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8/10 23:32 2006/08/10 23:32

이 음반은 "마이스터징거"의 규범적인 연주로 예전부터 높은 평가를 받아왔습니다. 주로 베를린 필, 빈 필,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이끌면서 그 방대한 음반을 녹음해낸 카라얀이 매우 드물게도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을 지휘하여 남긴 녹음이란 점, 그리고 르네 콜로, 헬렌 도나트, 칼 리더부쉬, 테오 아담 등의 화려한 배역들이 참가했다는 점만으로도 이 음반을 들어볼 가치는 충분할 것입니다. 게다가 금상첨화 격으로 연주 그 자체도 전성기의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한 카라얀과, 스튜디오 녹음이란 이점을 감안하더라도 높이 평가받을만한 훌륭한 가창을 선보이는 출연진들이 일심동체가 되어 가히 천의무봉에 가까운 외형적 완벽함을 뽐냅니다.

오케스트라 측면에서는 그야말로 이상에 가깝다고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마이스터징거"의 트레이드마크인 1막 전주곡은, 슈타츠카펠레 드레스덴이 아니라 수족같은 베를린 필과 함께 했다고 해도 이 정도로 해낼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 정도로 완벽한 기교와 표현을 들려줍니다. 1막과 2막 각각의 대미를 장식하는 난장판 장면에서는 소란스러움이 극에 달하면서도 뭉개지거나 흐트러짐이 없는 균형감을, 곳곳에 산재해있는 서정적인 장면들에서는 또 놀라울만큼 여릿한 피아니시모를 보여주며, 위풍당당함이 요구되는 축제 장면이나 3막 마지막 피날레에서 느껴지는 합주력은 정말이지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할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당대 최고 수준의 가수들 역시 오케스트라에 뒤지지 않는 호연을 들려줍니다. 사랑 앞에 물불 가리지 않는 젊은 기사 발터를 노래하는 르네 콜로와, 에파를 깜찍함이 지나쳐 영악스러울 정도인 가운데서도 풋풋한 순진무구함이 드러나는 귀여운 아가씨로 묘사해낸 헬렌 도나트의 연기력과 가창력은 만점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외에도 파이트 포그너를 부른 칼 리더부쉬, 다비드를 노래한 페터 슈라이어도 합격점을 받을 자격이 있는 좋은 가창을 들려줍니다.

다만 늙은 홀애비 두 사람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약간씩 아쉬움을 느낍니다. 테오 아담의 작스는 좋게 말하면 가부장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마치 인간이 된 보탄처럼 권위적으로 들리는 탓에, 구두장이 명가수의 유머러스함이 조금 부족합니다. 또한 에반스의 베크메써는 반대로 좀 과하게 희극적이고 비열하게 보이려 노력한 탓인지, 그렇게까지 과잉된 표현을 할 필요가 있는 것인지 의심을 품게 만듭니다. 베크메써는 작곡가의 의도가 반영된 철저한 악역이라는 한계가 있지만, 그래도 일말의 인간적 품위 내지는 연민의 시선을 비춰줄 필요가 있는 등장인물이라 생각하는 저로써는 베크메써에 대한 카라얀과 에반스의 해석에 의문부호를 병기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기왕 멀쩡한 무덤 파헤치다시피 흠을 잡아낸 김에 좀 더 트집을 잡자면, 이 음반은 카라얀의 지나친 완벽으로의 추구가 되려 과유불급의 역효과를 발생시키는 게 문제입니다. 작품 자체가 비록 바그너가 작곡하긴 했어도 엄연히 희곡 -오페라 부파?- 의 계보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칼같이 정확한 박자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앙상블을 추구한다 해도 필요한 순간에는 약간의 흐트러짐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카라얀은 그런 흐트러짐의 여유를 용납하지 못하였고, 덕분에 이 음반은 대놓고 스튜디오 녹음이란 것이 표가 날 정도의 인공미를 지니게 되고 말았습니다. 2막 마지막은 마치 바흐의 칸타타라도 듣고 있는게 아닐까 할 정도로 점잖고 균형잡힌(?) 난장판이고, 3막 후반부의 축제는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인한 시끌벅적함이 결여된 관영 축제를 연상케할 만큼 질서정연합니다. 일전에 소개드린 적이 있는 동 지휘자의 1951년 바이로이트 실황 "마이스터징거" 와 비교해보면 이러한 과유불급의 인공미는 확연히 드러난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뜯어발기다시피 흠을 잡아봤습니다만, 그래도 이 음반의 객관적인 완벽성 앞에서는 그 흠들은 그저 플라스틱 표면에 난 실낱같은 흠집 자국에 불과하다고 해야겠지요. "마이스터징거"를 들어보려고 하신다면 이 음반을 일단 꼭 한번 '직접' 들어보실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듣고 나서 제가 내린 평가에 수긍하신다면 계속 사랑해주시면 되고, 카라얀이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간에 싫고 그가 자아내는 인공미가 가증스러운 위선으로만 느껴지신다면 안 들으시면 그만입니다. 마치 선호하는 "마이스터징거" 연주 스타일을 규정하기 위한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고나 할까요. 확실한 것은, 이 음반만큼 객관적으로 완성된 연주를 찾아보기는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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