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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P 시대 말러의 숨은 명인 야샤 호렌슈타인과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1959년 3월 20일 런던 로열 알버트 홀에서의 실황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음반이다. 이 실황은 일설에 따르면 "천인"의 영국 초연이라고 하는데, 정확한 이야기인지는 잘 모르겠다. 국내에서는 누가 처음 사용했는지 모르겠지만 "급성 성령중독증" 이라는 별칭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연주다.

50년이나 묵은 라디오 실황 음원에게 오늘날의 디지털 스테레오 음원들 정도의 음질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웃긴 일이다. 비록 스테레오로 녹음되었고 디지털 리마스터링을 거쳤다고 하나, 그런다고 해서 반 세기라는 그 긴 세월을 뛰어넘는 기적이 일어날 리도 없다. 분명히 부제에 걸맞게 수많은 인원의 독창자들 및 합창단과 오케스트라가 굉음에 가까운 음향을 내뿜어야 할 작품이지만, 실제로 이 음반이 내는 소리는 답답하고 빈약할 뿐이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단점이 묘하게도 장점으로 작용한다. 딱히 종교적인 성향을 강조하는 음악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종교 합창 음악처럼 들리게 만드는 것이다. "천인"의 영국 초연이라는 이야기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연주 자체는 불안정하고 실수도 잦지만,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그리고 독창자들과 합창단이 보여주는 거의 종교적 열정이라고 불러야 할 정도의 정열과 진지함이 그 모든 흠결들을 눈감고 넘어가게 만든다.

그 예로 들 수 있는 순간들이 1악장 클라이맥스와 2악장 전체이다. 전자에서는 동곡의 다른 음반들에서 쉽사리 경험할 수 없는 고도의 상승감과 구조미가 느껴져, 그 앞까지의 왠지 모르게 어수선하고 의욕만 앞세우는 듯이 보였던 시간들을 싸그리 잊게 만든다. 그리고 후자는, 그 텍스트의 원천이 괴테의 "파우스트" 2막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마태 수난곡의 축약판이라도 듣고 있는 것처럼 감정의 한 부분을 쥐어뜯는다.

기술적으로 완벽한 연주라 해도 그냥 미미하게 지나가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로 불완전하고 미숙한 연주라고 해도 듣는 이의 마음을 마구 헤집어놓는 경우가 있다. 정신적인 면에서의 감흥이 두드러지는 호렌슈타인의 이 연주는 당연히 후자에 위치한다. 그런 의미에서 "급성 성령중독증", 누가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정말 딱 들어맞는 별칭이자 찬사가 아닐 수 없다.

ps(2008.8.27): 이 음반의 녹음 상황 및 내용에 대해 훨씬 자세하고 정확한 정보를 알고 싶다면 DC 인사이드 클래식 갤러리 "허름한괴링" 님의 게시글을 참조할 것. 이렇게 공력있는 분의 글을 보고 나면 난 아직 멀었다는 생각에 빠지게 됨.  "8번 영국 초연설"같은 거짓부렁을 내 귀에 흘려넣은 사람은 도대체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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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7 00:05 2008/08/17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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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리즘 말러", "버짓 말러" 등의 별명을 지니고 있는 엘리아후 인발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말러 전집. 그 중에서도 손꼽히는 수작이 바로 1986년의 제 7번 "밤의 노래" 다. 서두에서 언급한 별칭들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인발의 말러는 은사인 번스타인이 같은 레퍼토리에서 보여주는 과도한 낭만성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자리잡고 있다. 광기, 광폭, 대혼란, 폭주 등등, 일부 말러 팬들이 병적으로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 표현들은 인발의 말러 해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꼭 그렇지만은 않아도 어쨌던 일반인의 눈으로 볼 때 확실히 비주류 중견 지휘자임에는 분명한 인발. 베를린 필이니 빈 필이니 하는 호화찬란하고 뻑적지근한 이름값들을 자랑하는 일류 연주단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인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거기에다 손쉽게 이목을 끌 수 있는 자극성과 강렬함보다는 일견 수수하게 들리는 견실함과 명료함을 택한 해석. 소위 말하는 인기있는 말러 연주들 사이에 인발의 그것이 존재하지 않음은 이상의 이유들 때문이다.

그러나 적어도 이 7번 녹음에서만큼은 인발의 해석과 프랑크푸르트 라디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절묘호사"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낳았다는 것을 분명히 확인할 수 있다. 동곡에 있어서 널리 인정받고 있는 아바도와 시카고 교향악단의 84년도 동곡 구 녹음과 비교해 보면, 비록 아바도가 만들어낸 것과 같은 윤기넘치고 매혹적인 음색과 악상 표현은 없지만, 인발은 그 대신 '파삭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세세한 부분까지 명료하게 보여주는 이지적인 냉철함으로 감상자의 귀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이처럼 말러라고 해서 꼭 반쯤 정신질환에 걸린 것처럼 들려야만 할 이유는 전혀 없음을 훌륭하게 웅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발의 말러는 가치를 지닌다. 이지적인 냉철함, 그것은 번스타인의 자기도취, 텐슈테트의 처절함, 아바도의 세련된 낭만성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의 무게감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 몽환적인 밤의 세계를 담고 있는 악상들을 이토록 무덤덤하고 절제된 시각으로도 충분히 설득력있게 그려낼 수 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이 음반은 숱한 말러 녹음들 중에서도 그 나름의 위상을 확립하는데 성공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ps: "이지적인 냉철함"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해서 불레즈의 말러 해석과 유사하다고 생각치 않았으면 한다. 실제로 들어보면 알겠지만 불레즈와 인발은 상당히 분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불레즈의 작곡가로서의 자세에 바탕을 둔 이론과 분석에 일차적으로 의지하는 표현과는 달리, 인발은  지휘자로서의 자신의 경험과 직감에 바탕하여 그 나름의 "이지적인 냉철함"을 이끌어내고 있는 것이다. 표현력이 부족한 탓으로 확연히 그 차이를 묘사하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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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0 01:56 2008/02/20 0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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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스 텐슈테트는 매우 흥미로운 양상을 보여주는 지휘자입니다. 동독 출신이지만 지휘 활동은 런던 필하모닉을 비롯한 서방의 오케스트라들을 이끌고 더 왕성히 하였는가 하면, 그를 열렬히 추종하는 광적인 애호가 집단은 그의 주 활동무대인 유럽이 아니라 지구 반대편의 일본에 있다는 점 때문입니다. 특히 텐슈테트가 지휘한 말러 교향곡들은, 물론 유럽의 평론가들도 높이 평가하고 있긴 하나, 일본의 텐슈테트 매니아들에게서 가장 큰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때문에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구할 수 없거나 절판된 음원들이 일본 로컬반 혹은 해적반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텐슈테트와 런던 필의 1991년 실황 역시 EMI 본사의 카탈로그에서는 찾아볼 수 없고, 일본 도시바 EMI의 로컬 반으로만 만나볼 수 있는 음원입니다. 이 음반은 텐슈테트의 열렬한 팬들을 비롯한 상당수의 애호가분들이 "말러 6번의 최고봉"이라고 높은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다가, 더구나 언제부턴가 도시바 EMI의 음반들이 한국에 잘 수입되지 않게 되자 희소성까지 생겨서 더더욱 애호가의 구미를 자극하는 물건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저 또한 오랜 동안 이 음반을 찾아다니던 불우한(?)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때마침 새로 재출반되어 나온 것을 일본에서 살다 건너온 동아리 후배 덕분에 어렵사리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간 들어온 어마어마한 평가들에 기대치가 한껏 부풀어 있는 상황에서 CD를 플레이어에 걸었는데, 1악장과 2악장은 의외로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풍이라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습니다. 일본 애호가들이나 한국의 일부 말러리안들은 텐슈테트가 보여주는 말러 교향곡 해석에 대해 매우 비장하고 웅장한 폭연(暴演)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는데, 이 음반의 1, 2악장은 그렇게 거창한 말을 들을 수준은 분명히 아닙니다. 매우 무겁고 진중한 음색은 활활 타오르는 활화산이라기보다는 묵직하고 견고히 자리잡은 화강암괴에 더 가깝습니다. 오토 클렘페러와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의 저 유명한 1961년도의 말러 교향곡 2번 1악장과 아주 흡사한 느낌입니다.

기대보다는 무덤덤하게 지나간 1, 2악장에 비해, 3악장은 확실히 텐슈테트가 수준높은 말러 전문가임을 보여주는 순간이라 하겠습니다. "비극적"이라는 부제에 걸맞는 무겁고 비장한 분위기가 작품 전반에 감도는 가운데서도 잠시나마 허락되는 안식처럼 자리잡고 있는 듯한 3악장인데, 텐슈테트와 런던 필하모닉은 여기에서 단순히 평안한 휴식의 한 때를 보여주는 정도를 넘어서서 숭고하기까지 한 아우라를 뿜어냅니다. 마치 극복할 수 없는 운명 앞에 곧 무너져버릴 영웅에게 하늘의 천사들이 동정어린 시선을 던지고 있는 듯한 분위기는 상당한 여운을 남깁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4악장은, 마침내 텐슈테트의 팬들이 그토록 즐겨 말하는 "폭연"이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30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강고한 운명에 당당히 맞서 싸우는 영웅의 사투가 생생히 그려집니다. 그 비장하고 장엄한 묵시록의 풍경화는 딱히 비교할만한 상대를 찾기가 힘들 정도이고, 특히 해머의 타격음과 제일 마지막 순간에 울려퍼지는 오케스트라 전체의 비탄에 가득찬 탄식은 아주 강렬한 인상과 감회를 감상자에게 안겨줍니다.

종합하자면 동독 출신이라는 지휘자의 특색에 걸맞게, 기본적으로는 견실하고 견고한 구조미를 추구하는 가운데 응축된 에너지가 마지막 악장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거대하고도 강렬한 인상을 남겨주는 연주라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에너지가 임계점에 달해 폭발할 때까지의 시간이 제법 걸리는 탓에, 1, 2악장에서 조금 지루하고 답답한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는 게 흠입니다. "폭연" 운운하는 일부 평론가들 및 텐슈테트 매니아들의 과도한 평가에 너무 신경쓰지 않은 상태에서 접했을 때, 더 큰 감동과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음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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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1 22:05 2007/02/21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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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과도 같은 성품을 지닌 지휘자로써, 특유의 부드럽고 따뜻한 음색으로 21세기가 된 지금도 많은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브루노 발터. 지금 우리가 접할 수 있는 그의 음반 대부분은 4, 50년대에 미국에서 뉴욕 필과 콜럼비아 필을 이끌고 녹음한 것으로, 비교적 노년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전성기가 20세기 초반이었다고 평가받고 있는 점에서, 발터 역시 토스카니니와 마찬가지로 녹음 기술의 혜택은 그다지 누리지 못한 명지휘자였다고 할 수 있겠지요.

극히 적은 수의 음반들만이 제 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유럽에서 최전성기를 누리며 명성을 날리던 시절의 발터의 음악 세계를 접해볼 수 있게 해 줍니다. 그 중에서도 1938년 빈 필과 함께 무지크페라인잘에서 말러의 9번 교향곡을 연주한 실황을 담고 있는 이 음반은 거기에 담겨 있는 음악 그 자체 뿐만 아니라, 그 녹음 과정을 전후하여 지휘자 본인이 처하게 된 고난과 시련의 사연으로 인해 듣는 이들의 마음 속에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습니다.

연주 자체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음색을 트레이드마크로 삼고 있는 발터인 만큼, 악장 하나 하나, 음절 한 소절 한 소절마다 마치 따뜻한 햇빛이 내려쬐고 있는 늦가을 오후의 정경을 연상케하는 느낌을 줍니다. 말러의 교향곡들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 선입관 - 요란하고 시끌뻑적하다는 - 에 걸맞는 장면은 거의 발견되지 않습니다. 가장 요란스럽게 연주되어야 할 3악장마저도 왠지 각이 둥글게 무디어져 있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런 한편으로, 연주 시간이 70분 정도로 매우 빠르다는 점은 상당히 의외였습니다. 상당히 빠른 템포를 취하고 있지만 맹렬함이나 광폭함과는 100만 광년 쯤 거리를 두고 있는 음색을 들려준다는 점은 발터의 명인기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라 하겠죠.

이 음반이 녹음될 당시 발터가 처해있던 상황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이 주는 잔잔한 감동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유태인이었던 발터는 1936년 독일에서 나치가 집권하게 된 이후부터 음악 생활의 터전들을 하나 하나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베를린 필을 비롯한 독일 국내의 유수의 교향악단과의 연주가 불가능하게 된 것은 물론이었고, 나치 정권의 위세가 강해질 수록 유럽 본토에서 그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가게 되었습니다. 나치가 오스트리아를 병합하게 된 이후에는 거의 대부분의 음악적 경력을 쌓아왔던 빈에서마저도 포디움에 설 수 없는 처지가 되었지요. 이 음반에 수록된 연주회가 열린 지 1주일 후, 발터와 빈 필의 몇몇 동료들은 하켄크로이츠가 휘날리는 빈을 떠나 유랑자의 신세가 되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박해와 수난 속에서도, 발터는 굴하지 않고 오로지 음악에 헌신하는 자세를 견지하며 지휘자로서의 사명을 다 하였던 것입니다. 이 음반은 그와 같은 발터의 음악에 대한 헌신을 역력히 보여주는 불멸의 기념비와도 같습니다. 음악 그 자체만을 두고 본다면 이후의 연주들 중에서 이에 버금가거나 심지어는 능가한다고 할 만한 명연들도 상당히 많고, 녹음 상태를 문제시할 경우 아무래도 70년 전의 모노 녹음이라는 점에서 디지털 시대 이후의 녹음들 앞에서는 명함꺼내기가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진정한 음악가의 혼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음반은 동곡의 다른 녹음들에는 없는 소중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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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02 00:11 2006/12/02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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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러의 교향곡 10번은 원래 미완성 작품이었습니다. 작곡가가 생전에 완성했던 부분은 1악장 아다지오까지만이고, 그 이후에 대해서는 단편적인 악보들과 스케치들만이 남아 있었지요. 말러 본인은 유언에서 이 미완성 작품을 폐기시켜 줄 것을 아내에게 당부했지만, 그녀는 이 유언을 무시하고 남아있던 악보 전체를 출판했습니다.

출판된 악보들은 2악장 이후 작품의 구상과 전개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거의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이었습니다. 때문에 일부 작곡가들과 음악 학자들은 이것들을 기초로 완성된 하나의 교향곡을 만들어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말러 사후 상당한 세월이 지나, 영국의 음악 학자 데릭 쿡이 마침내 말러의 10번째 교향곡 전체의 악보를 완성하게 됩니다. 쿡은 이 악보가 어디까지나 "연주 가능한 레이 아웃"에 지나지 않으며, 말러가 살아 있었다면 수많은 편집과 수정을 통해 상당히 다른 모습의 작품으로 바뀌었으리라 추측했습니다.

사실 쿡이 내놓은 결과물과 그 이후에 등장한 다른 학자들의 결과물들이, '말러의' 10번째 교향곡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의 여부는 좀 미묘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완성이란 어디까지나 작곡가 그 본인의 손을 거쳤을 때만 가능하다는 관념에서 생각해볼 때, 음악 학자들의 작업 결과물이 진정한 '말러'의 작품이라 보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지요. 어쨌던 그들의 작업 덕분에 말러의 10번째 교향곡 전체 혹은 그 레이 아웃을 연주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리카르도 샤이의 1986년도 녹음은 현존하는 교향곡 10번의 음반들 중에서는 가장 지명도가 높은 것입니다. 쿡의 악보를 사용하고 있는 이 음반에서 샤이와 베를린 라디오 심포니는 아주 자연스럽고 무난한 연주를 들려줍니다. 사실 카라얀, 번스타인, 발터 등의 거장들이 1악장 만을 손댔을 뿐 10번 교향곡 전체를 녹음하지는 않은 덕분에 샤이가 반사 이익을 보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고, 그 자체로만 평가한다면 그닥 많지도 않은 10번 교향곡의 음반들 중에서는 단연 첫손에 꼽을 수 있는 음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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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1/08 09:42 2006/01/08 09:42


이 음반은 이런 저런 말들 때문에 말러 교향곡 CD들을 모으려고 처음 생각했을 때부터 꼭 들어보아야겠다고 일치감치 점찍어놓은 물건이었습니다. 그 "이런 저런 말들" 이란 다음의 두 이야기를 뜻합니다. 첫 번째 이야기는 카라얀이 숙적(?) 번스타인이 '감히' 베를린 필과 함께 동일 작품을 1979년 실황으로 연주하여 호평을 받은 것에 충격을 받고 이 음반을 계획했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이 음반이 카라얀을 싫어하는 사람들마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인 연주라는 것이지요.

사실 이전의 카라얀과 베를린 필이 들려주던 음향을 생각해볼 때, 이 음반은 상당한 괴리감을 느끼게 해줍니다. 1악장은 "이게 카라얀?"이란 생각이 들 정도로 왠지 모르게 주저하고 흐트러지는 느낌을 줍니다. 기존의 카라얀이 보여주던 자신감과 완벽함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실로 놀라운 점이지요. 이후의 2, 3악장은 다시 카라얀다운 모습을 보여줍니다만, 그 다음의 4악장은 "카라얀을 싫어하는 사람들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라는 세간의 평가에 동의하게 만드는 충격과 감동을 주더군요.

예전에도 몇번 언급한 듯 합니다만, 개인적으로 카라얀의 음악은 "음악적 전형성의 극한적인 추구"를 지향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느낌이 나야할 듯 할 때 바로 그런 느낌을 내주는" 식으로, 카라얀은 관객들과 비평가들이 지니고 있는 선입관과 전형성을 충실히 충족시키는데 전념해왔습니다. 즉, 그는 음악에 자신의 감정이나 사상을 투영시키지는 않았던 것이죠. 바로 그러한 음악에 대한 태도가 카라얀으로 하여금 그토록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얻게 만들고, 그처럼 수많은 음반들을 남기게 한 원동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음반의 4악장에서 느껴지는 처연함과 담담함은 분명 관객과 비평가의 음악적 전형성을 충실히 만족시키고자 하는 태도와는 거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음반의 표지에 나온 것처럼 인생의 종착역에 거의 다다르고 있는 노년의 카라얀 자신의 감정 그 자체인 것입니다. "황제"라는 찬사와 "코카콜라"라는 악담을 동시에 들어가며 한 평생을 치열하게 살아왔던 카라얀도, 생애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며 자신의 생애를 뒤돌아보자 문득 왜 그리도 악착같이 살았어야 했나, 하고 생각하게 된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아마도 그러한 감정이 카라얀으로 하여금 말러 9번이라는 작품을 선택하게 만들었으리라 봅니다. 생각해보면 말러도 치열한 생애를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도 젊었을 때는 1번 교향곡에 등장하는 "거인"처럼 젊고 강인하여 어떤 고난도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은 패기를 과시했었지요. 그러나 생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어렴풋이 느끼게 된 "대지의 노래" 와 마지막 작품이 되어버린 9번 교향곡에 등장하는 음악적 화자는 그와는 정 반대입니다. 늙고 쇠약한 채로 조용히 그리고 차분하게 죽음을 준비하는 모습....... 작곡 당시의 말러의 심정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9번 교향곡의 음악적 화자의 모습에, 카라얀 또한 강한 공감을 느꼈던 것이 아닐까요.

물론 여기까지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저의 억측에 가까운 추측입니다. 카라얀이 번스타인에 대한 경쟁 의식으로 이 음반을 기획하고 준비하였다는 세간의 가십이 사실에 더 가까운 것인지도 모르지요. 그러나 설령 그렇다고 해도, 이 음반의 4악장에서 느껴지는 늙은 "황제"의 처연하고 담담한 이미지 만큼은 음반을 들을 때마다 제 마음에 다시 되살아날 것 같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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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6/01/04 23:50 2006/01/04 23:50


"대지의 노래"는 원래대로라면 말러의 아홉번째 교향곡이어야 했습니다만, 특별한 이유로 인해 정식으로 "No. 9"의 이름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 특별한 이유란 바로 말러의 "9번 교향곡의 저주(?)"에 대한 두려움이었지요. 베토벤, 슈베르트, 브루크너 같은 작곡가들이 모두 9번 교향곡을 작곡한 후 또는 작곡하다가 사망한 사실이, 건강에 신경을 쓰던 말러에게는 큰 두려움을 주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이 작품을 접해보면 과연 이게 "교향곡"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저절로 들게됩니다. 총 6악장으로 구성된 교향곡이라기보다는 6개의 노래로 구성된 가곡집으로 보는 쪽이 좀 더 자연스럽게 느껴지지요. "대지의 노래"의 마지막 악장을 듣고는 '무슨 노래를 26분 가까이 부르냐' 라고 툴툴거렸다는 내용의 블로그 포스팅을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이 작품을 처음 듣는 사람 모두가 거의 대부분 이런 평가에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말러의 이전 작품인 교향곡 8번의 경우나, 더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1번에서 4번까지의 초기 작품들을 생각해보면, "대지의 노래"는 '말러식' 교향곡임이 분명합니다. 그 증거로는 앞서 소개드린 평가에서 등장하는 "26분이나 노래부르는" 6악장, "이별Der Abschied"을 들 수 있겠습니다. 단순히 가곡집의 한 가곡이라 생각하기에는 "이별"은 시간 상으로 그리고 호흡 상으로 너무 길지요. 반면에 '성악이 하나의 악기로서 참가한 교향곡'으로 "대지의 노래"를 보는 경우, "이별"의 그 길디 긴 노래는 하나의 악장을 관통하는 주 선율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편 "이별"은 사용된 텍스트의 내용적 측면에서 매우 의미심장합니다. "대지의 노래"에 사용된 텍스트는 말러가 작곡 당시 인기를 끌던 "중국의 피리"라는 시집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이 시집은 이백을 비롯한 여러 중국 시인들의 작품들을 독일어로 번안한 것인데, 말러는 원작을 자기 나름대로 각색하여 작품에 사용하였습니다. "이별"에서 말러는 마지막에 "영원히"라는 대사를 추가했는데, 잔잔하고 애조어린 오케스트라의 선율이 점점 꺼져들어가면서 조용히 울려퍼지는 "영원히"는 마치 작곡가가 스스로의 죽음을 예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대지의 노래"라는 제목이 사실은 "이승의 노래"로 번역되야 정확하다는 의견은 이 부분에서 엄청난 타당성을 지니지요.

여기 소개하는 브루노 발터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1952년도 "대지의 노래" 녹음은 이 작품을 '말러가 이승에 보내는 마지막 인사'로 보는 시각에서는 최고의 평가를 받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작품의 서정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발터의 지휘는 '조용한 슬픔'이 무엇인지를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이러한 느낌은 번스타인이나 카라얀, 아바도 등의 후세의 지휘자들이 지휘한 말러 교향곡들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말러의 삶을 가까이에서 지켜볼 수 있었던 발터의 작곡가에 대한 개인적인 추모의 정이 크게 작용한 효과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음반을 언급함에 있어서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요소는 가창을 맡은 콘트랄토 캐슬린 페리어입니다. 그녀는 1950년대 당시 영국을 대표하는 여성 가수였습니다만, 불행히도 그 인기와 실력이 정점에 달했던 시기에 암 선고를 받아야 했습니다. 결국 페리어는 1953년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요. 그녀가 세상을 떠나기 바로 전 해에 녹음된 발터와의 이 "대지의 노래" 레코딩은 페리어의 "백조의 노래" 입니다. 죽음을 앞둔 가수 본인의 개인적인 감정이 많이 반영된 듯, 스피커를 통해 들려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눈물이 저절로 흐를 만큼 서글픕니다. 특히 "이별"의 마지막 가사, "영원히.....영원히....."에서 페리어의 목소리는 거의 끊어질듯 말듯 들리는데, 그 순간의 느낌에 대해서는 직접 들어보시라고 말씀드릴 수 밖에 없군요.

이처럼 너무나도 감동적인 연주가 담긴 음반입니다만, 그래도 옥의 티가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우선 또 다른 가수인 율리우스 파착이 페리어에 비해서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듯이 느껴진다는 점입니다. 딱히 흠잡을 곳은 없습니다만, 페리어가 들려주는 극한의 감동에 비하자면 왠지 그 중량감이 떨어집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옥의 티는 1952년이라는 녹음 년도에 기인한 문제, 즉 Mono 음질이라는 점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이게 왜 문제가 되어야 하는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만, 아무리 명연주라 해도 Mono라면 싫다! 라는 분들도 계신지라 사전 경고의 의미에서 알려드립니다.

PS: Mono를 기피하는 풍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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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5/12/15 08:18 2005/12/15 08:18


오늘날 말러의 교향곡들은 일종의 붐을 이루며 클래식 음악계의 엄연한 주류 레퍼토리로 정착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하지만 정작 말러가 생존해 있을 당시, 그의 교향곡들은 비평가들과 관객들로부터 그닥 좋은 말들을 듣지 못했었지요. "지휘자로서의 명성과 실적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설프고 괴상하기 짝이 없는 작품들을 내세우며 작곡가로서의 명망까지 탐낸다" 라는게 말러에 대한 당시 비평가들의 주된 평가였습니다. 관객들의 반응 역시 그와 대동소이하게 나빴고, 덕분에 말러의 교향곡들은 실패를 거듭하기만 했습니다.

그와 같이 동시대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교향곡들만을 내놓던 말러가, 그의 짧고 격렬했던 인생의 후반부에 들어서서 단 한번, 작곡가로서의 성공을 맛보게 됩니다. 그 주역이 된 말러 유일의 '히트곡'이 바로 교향곡 8번입니다. 8번은 무엇보다도 규모의 측면에서 일반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거작'입니다. 뭔헨 초연 당시 동원되었던 연주자들의 숫자가 솔로를 포함한 858명의 성악가와 171명의 연주자를 합쳐 1029명에 달했던 것입니다. 또한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이 작품은 흐라바누스 마우르스가 쓴 강림절 송가와 괴테의 파우스트 2부 중 마지막 장면에서 가져온 텍스트를 바탕으로, 장중하면서도 감동적인 음색을 들려줍니다.

이처럼 청자를 매료시키는 요소로 가득차 있음에도 불구하고, 8번은 연주회장에서 접해보기가 매우 힘든 작품이고 음반도 여타의 말러 교향곡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적은 편입니다. 게다가 그 몇 안되는 음반들 중에서, 제대로 8번의 감동을 전달해줄 수 있는 음반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 너무 규모가 큰 작품이 되고보니 제대로 연주하기도 힘들고 녹음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특히 녹음의 측면에서의 어려움은 해결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현대의 음향 기술이 디지털이니 돌비 스테레오니 하면서 그 뛰어남을 과시한다 해도 실제 연주회장에서 들을 수 있는 음향을 완전히 재현하는데에는 무리가 따르는 게 현실입니다. 그러니 "천인"의 연주자들이 내뿜는 음색을 올바로 담아내기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인 것입니다.

여기 소개하고 있는 솔티 경과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8번은 그나마 그러한 어려움들을 어느 정도 극복해내는데 성공하여, 이 작품의 대표적인 명반으로 널리 추천되고 있는 음반입니다. 이러한 성공의 원인으로는 다음의 요인들을 생각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우선, 지휘자가 대규모 작품을 다룬 경험이 많은 솔티 경이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녹음이 이루어진 장소가 빈의 소피엔잘로, 이 음반을 기획한 데카 음반사가 많은 경험을 통해 그 공간적 특성을 완전히 숙지하고 있던 곳이었다는 것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물론 르네 콜로, 마르티 탈벨라, 루치아 폽 등으로 구성된 일류의 솔로이스트들, 머나먼 유럽까지 와서 연주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은 시카고 심포니의 단원들, 그리고 음악의 도시 빈을 대표하는 3대 합창단으로 구성된 "천명"의 연주자들의 훌륭한 기량도 빼놓을 수 없겠지요.

이상과 같은 이유로, 솔티 경의 8번은 아바도의 말러 1번 신반과 마찬가지로 어딜 가나 호평받고 추천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음반도 녹음 기술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고, 때문에 LP 시절에 이 음반을 즐겨 듣던 분들 중에는 재발매된 CD의 음향을 '너무 뭉친다'라는 이유로 탐탁치 않게 생각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한 솔티 경의 이른바 '힘으로 밀어붙이는' 지휘 스타일을 싫어하시는 분들에게는 이 음반이 그닥 매력적으로 다가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티 경의 "천인"이 보여주는 그 웅혼한 기상과 일사불란하면서도 드라마틱한 음색은 청자들을 언제나 감동시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한장의 명반"이라는 괴이한 기준점에 가장 가까이 다가선 음반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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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5/12/12 10:36 2005/12/12 10:36


말러의 일곱번째 교향곡은 작품의 2, 4악장에 붙여진 "밤의 노래"라는 별칭을 그대로 부제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적어도 이 작품의 4악장까지는 그 부제가 상당히 그럴싸하게 느껴집니다. "밤"이라는 단어와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는 인간에게 있어서 매우 복합적이고 다중적인 의미로 다가오는데, 이 작품은 그러한 "밤"의 특성을 잘 전달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밤"이라는 존재에 대해서 다양한 감정을 느낍니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한밤중의 어둠에 대해서는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고요하기 짝이 없는 적막한 밤을 홀로 보내게 될 때는 고독함이나 누군가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기도 하죠. 때로는 은은한 달빛이 함께하는 밤의 풍경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찾아낼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에게, 밤이라는 시간은 휴식과 수면을 통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편안함과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고마운 존재이기도 합니다.

말러의 교향곡 7번은 이처럼 복잡다양한 밤의 면모를 그 안에 뭉뚱그려 담아놓은 작품입니다. 그래서 처음 이 작품을 듣게 되면 약간의 혼란스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말러의 다른 교향곡들과는 달리, 이 작품에는 일관성있게 제시되는 '줄거리'가 없습니다. 작품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몽환적인 느낌의 "밤"의 이미지들 뿐이고, 그들 상호간에는 어떠한 논리적 유기성이나 원인관계같은 것이 전혀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순수 이미지 위주의 음악적 화법은 작품 발표 당시부터 많은 평론가들이 이 작품을 매우 진보적이라고 평가하게 만든 원동력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5악장입니다. 곡의 시작부터 네번째 악장까지를 가득 채우고 있는 몽환적 이미지의 무차별적 나열에 뒤이어 갑작스럽게 터져나오는 5악장 도입부의 팡파르는 실로 쌩뚱맞기 그지없습니다. 물론 활기에 가득찬 밤의 모습을 제시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한다 해도 그전 악장까지 제시되고 있던 이미지들과 5악장에서 제공되는 이미지 사이의 간격은 너무 넓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5악장이 밤의 끝자락, 그러니까 점차 동이 터오면서 어둠이 밀려나가는 정경을 묘사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고 추측해봅니다만......

이와 같이 다채롭고도 무질서한 "밤의 노래"와 가장 궁합이 맞는 지휘자를 꼽으라면,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거론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전에 소개드렸던 베를린 필과의 1번 녹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바도는 말러 교향곡들 속에 내포된 추상적 이미지 하나 하나를 매우 세심한 부분에까지 그러면서도 무리하는 기색없이 상큼하게 묘사해냅니다. 그러한 그의 놀라운 지휘력은 7번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습니다.

그는 말러 교향곡 7번에 관해 두 개의 음반을 남기고 있는데, 여기 소개하고 있는 시카고 심포니와의 '구반'과 2001년 녹음된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신반'은 모두 7번을 대표하는 명반들로서 아주 좋은 평가를 받고 있지요. 아바도의 '이지적인 열정'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두 음반 중 어느 쪽을 선택해도 만족하시리라 생각합니다. 참고로 제가 굳이 '구반'을 택한 것은, 단지 '신반'보다 싸다는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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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5/12/09 22:08 2005/12/09 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