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하면 다음의 두 이미지가 여전히 대중적으로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는 그 잡초같은 생명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불면증 치료용 음악" 루머이고, 다른 하나는 "굴드베르크"이다. 이런 이미지들에게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면, 레온하르트의 1976년도 "골드베르크" 녹음을 대안적인 선택으로써 권하고 싶다.
올해로 탄생 80주년을 맞은 정격 연주계의 대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는 도합 3종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남기고 있다.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진 1976년도의 녹음은 바흐 생존 당시의 시대 양식에 맞추어 연주되는 "골드베르크"를 듣고 싶다면 한번 쯤은 꼭 들어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평론가들과 애호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받는다.
피아노로 연주된 "골드베르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하프시코드의 챙강거리는 음색이 자못 낯설고, 심지어는 시끄럽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첫인상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세부까지 상세히 보여주는 명료함으로 대체된다. 특히 터치 하나 하나에 지극한 진지함과 집중력을 담고 있는 레온하르트의 명인기는 이러한 하프시코드 특유의 음색이 내는 효과를 더욱 강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반복부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는 점 또한 여기서는 흠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명료성과 집중도를 강화시켜주는 탁월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연주 자체의 외형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연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서도 레온하르트의 "골드베르크"는 주목할 만 하다. 굴드가 보여준 낭만성과 자유로움은 분명 잊지 못할만큼 매력적이나, "진짜 그 시절 그대로"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레온하르트가 들이는 학구적인 분석의 산물인 이 음반에서 그려내고 있는 바흐의 면모 역시 그에 못지 않는 광채를 발한다.
이처럼 이 음반에는 바흐에 대한 그리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학구적인 분석과 접근의 결과물을 진지한 자세로 실체화시키는 명인의 숨결이 담겨 있다. "불면증 치료용 음악"이라는 루머도, "굴드베르크"의 매력도 온데간데 없다. 모든 '껍데기'를 날려버린 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바흐와 "골드베르크"를 온전히 맛보고 싶다면, 이 음반을 접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 음반을 접하는 것이 쉬운 편이다. 특히 레온하르트가 탄생 8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더욱 그렇다. 기존에 DHM-BMG 레이블에서 나온 단독 음반이 여전히 시중에 유통되는 가운데, Sony BMG가 내놓은 레온하르트 탄생 80주년 기념 쥬빌리 박스 염가반과 DHM 레이블 창립 50주년 기념 박스반에 동일 연주가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이 시기가 지난 후에는 더이상 재발매가 되지 않아, 갈수록 구하기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된다.
단일 음반으로 팔리던 연주가 염가 박스반으로 그것도 두 개의 별개 시리즈물에 각각 수록되었다는 것은 음반사들이 이 음원의 경제적 가치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비해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반기지 않을 수 없지만, 이처럼 음악적으로 가치있는 명인의 연주가 갈수록 하찮게 여겨지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약 참으로 그러하다면 정말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Posted by A.J.H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