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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에 나왔던 멀쩡한 음원들을 마구 뭉쳐서 박스 하나에 쓸어넣고 특가랍시고 팔아대는 요즈음의 추세에는 정말 치가 떨릴 지경이다. 물론 클래식 음반 시장의 불황이 이 사태의 주범이라는 점 정도는 알고 있지만, 그 돌파구를 신매체의 등장을 핑계삼은 "떨이 세일"에서 찾고 있는 메이저 음반사들의 모습은 안타깝기만 하다. 못 구하던 음원들을 싸게 구매할 수 있는데 뭐가 불만이냐고 할 수도 있으나, 제대로 된 해설집과 최소한의 꾸밈새도 없이 조악한 종이 박스에 CD들만 잔뜩 우겨넣은 재발매 박스반들의 천박함은 누가 뭐라고 한대도 참 불만스러운 사항이다.

"피아노의 구약 성경"으로 불리우는 바흐의 평균율 전곡을 안젤라 휴이트가 연주한 Hyperion의 음원이 4For2로 재발매되었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머리속에 떠오른 것은 DG의 Collecter's Edition 시리즈의 바로 그 조악함이었다. 요즘 등장하고 있는 매머드급 구성의 염가 박스물들에 비하면 그래도 양반이지만, 그 시리즈가 그간 보여 온 음반 구성상의 조악함은 이미 이 바닥에서는 정평이 나 있다. 구매 예약 신청을 넣으면서 혹시나 휴이트의 평균율 재발매 박스물도 그런 꼴이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끝내 뇌리를 떠나질 않았었다.

하지만 기우였다. Hyperion은 매우 성실하고도 세련된 음반 구성으로, 휴이트의 균형잡힌 훌륭한 평균율 연주에 빛을 보탰다. 종이 재질의 CD집을 선택한 것은 아쉬웠지만, 거기 사용된 종이의 재질과 마감 처리, 무엇보다도 각 CD집 뒷면에 삽입된 평균율 각 곡의 주선율 소개 이미지는 그야말로 감동스럽기 짝이 없다. 또한 해설집에도 휴이트 본인이 직접 쓴 소개글과, 실제 평균율의 연주 과정에서 자신이 느끼는 점들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3개 언어로 수록되어 음반의 영양가를 더욱 끌어올리고 있다.

똑같은 염가 재발매 박스 전집물인데도 어찌 이리 차이가 날 수 있을까! 뭘 이렇게까지 호들갑인가 할 분들이 계시겠지만, 몇 페이지 되지도 않는 해설집의 내용을 정말 형식적인 평론가 내지 음악학자들의 구태의연한 소개글이나, 얼마 되지 않는 정보량의 작곡가 또는 연주자 정보로 채우는 메이저 음반사들의 행태와 비교해보면 호들갑을 떨지 않을 수가 없다. 게다가 음반 디자인의 측면에서 이 음반과 메이저 음반사들의 염가 박스물들은 비교조차 힘들 판이다.

그렇다면 연주는? 물론 명불허전이다. 굴드식 천상천하 유아독존 연주나 요즈음 시대악기 연주자들의 점잔빼는 연주와는 분명히 다른, 균형잡히고 중용적인 평균율을 들을 수 있다. 기본기를 닦는 내용의 평균율 1권에서 느껴지는 정성 가득한 충실함과, 점차 명인기적 기교로 채워지는 2권에서의 자신감 넘치는 낭만성이 전체적으로 이상적인 조화를 이루는 형국이다. 한 마디로 지나치게 넘치거나 모자라는 점이 없어서 그 누구에게나 선뜻 권할 수 있는 음반인 것이다.

한 가지만 더 칭찬하자. Hyperion의 녹음 기술은 정말 훌륭한 음질을 일구어내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들어본 CD 음반들 중에서, 피아노 특유의 은은한 잔향을 이 음반에서처럼 제대로 잡아낸 경우를 찾아낼 수는 없었다. RCA에서 나온 S.리히터의 유명한 평균율 연주의 단 한가지 결점이 바로 목욕탕에서 피아노를 친 것 같은 웅웅거리는 음질인 것은 잘 알려진 얘기이다. 그래도 울며 겨자먹기로 그 음반을 들어 왔다면, 휴이트의 이 음반에서 제대로 된 피아노의 음색과 표현력을 즐기기 바란다.

정말이지, 메이저 음반사들이여,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이만큼만 해주면 안될까? 가격이 조금, 아니 많이 올라간다고 해도 이 평균율 음반이 보여주고 있는 정도의 짜임새와 완성도만 보장해준다면 앞으로는 아무리 터무니없이 방대한 양적 구성의 초매머드급 재발매 박스물을 내놓는다고 해도 아무 말 하지 않겠다. 제발 좀 이만큼만 해달란 말이지.

ps: 이 음반을 듣고 안젤라 휴이트의 바흐 해석에 감명을 받았다면 그녀의 공식 홈페이지도 꼭 들러보기 바란다. 공연과 녹음으로 점철된 일과를 충실하고도 담담하게 써 나가는 그녀의 성실함과 진솔함에 또 한번 감명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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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10/13 16:34 2008/10/13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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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많고 많은 브람스 교향곡 전집이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 자연스럽게 먼저 손이 가게 되는 음반은 단연코 뵘과 빈필의 70년대 녹음이다. CD 재발매에도 불구하고 별로 나아지지 않은 리마스터링 상태가 옥의 티이지만, 음질 상의 아쉬움을 잠시 접어둔다면 높은 하늘 아래 낙엽지고 소슬한 바람이 불며오는 정경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음반이기 때문이다.

뵘과 베를린 필의 1959년도 브람스 1번 교향곡 연주가 이 전집에 수록된 동곡 연주보다 더 높이 평가받는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들으면 들을 수록 진국이 우러나온다고 할만 한 연주는 오히려 빈 필 쪽인 듯 하다. 59년도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것은 가을의 정경이라기보다는 늦여름의 열기와 같은 장년의 브람스의 패기이다. '가을의 브람스'는  더 여유롭고 풍성한 음향과 해석을 들려주는 70년대 전집 쪽이 한층 납득이 가게 그려내고 있다.

그렇다. 위 문단에서는 1번 교향곡에 국한하여 살펴보았지만 사실 '좀 더 여유있고 풍성하게'라는 수식어는 뵘의 70년대 브람스 교향곡 전집 전체를 관통하는 해석 상의 핵심이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한가을 오후에 낙엽이 가득한 숲 속을 거닐 때 느낄 수 있는 원목의 향기에 비견할만한 풍미가 잔잔하게 느껴진다. 다른 지휘자들도 제각각의 풍미를 띄는 브람스를 들려주고 있지만,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에 걸맞는 품격과 원숙함 그리고 지휘자 자신을 너무 드러내지 않는 겸양은 뵘 만의 것이다.

이 음반을 '맛깔난다'라고 평가하기는 무리다. 오히려 그 반대로, 처음 접하면 되려 매우 심심하고 평범한, '니 맛도 내 맛도 없는' 무덤덤함이 부각되어 보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최근에 어렸을 때는 그렇게 싫어하던 가지 나물을 정말 맛있다고 느끼며 먹게 되었다. 뵘의 70년대 브람스 전집은 바로 그 가지 나물과도 같은 존재이다. 처음 접할 때는 수수하고 약한 인상이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은은한 풍미가 느껴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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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0/05 15:06 2008/10/05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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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연"이라는 표현을 최근에는 매우 자제하여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수없이 많은 아마추어 및 프로 평론가들이 하도 많은 음반들에 이런 칭호를 붙이는 바람에,  "명연 인플레" 현상이라 부를 수 있을만한 상황이 현재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아마추어 평론가들과 애호가들이 자신들의 감동을 표현하는데 이 단어를 남발하는 증상을 보이는데, 개인적으론 이를 조금 못마땅하게 여기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개인적인 금기를 깨고 감히 그 단어를 이 포스팅의 제목에 사용하게 될 정도로, 바비롤리 경의 1968년도 "나비부인" 음반은 훌륭했다. 카를로 베르곤치와 레나타 스코토를 필두로 한 성악진들, 로마 오페라 극장의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그리고 이탈리아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지만 영국을 대표하는 음악가로 각인된 지휘자, 이들 모두가 혼연일체로 어우러져 매우 극적인 오페라 연주를 일구어냈다.

바비롤리 경은 이 작품의 주요 극적 장면들에 있어서 등장인물들의 심리 상태를 상세히 묘사하려고 노력하는 한편, 전체적인 구성의 측면에 있어서 그러한 상세함이 지나치게 극의 전개 속도를 처지게 만드는 일이 없이 듣는 이로 하여금 집중력을 지속할 수 있게 해준다. 타이틀 롤의 스코토 또한 주연 소프라노를 육체적, 기량적, 심리적으로 혹독하게 몰아붙이는 이 작품의 중압감을 잘 감내하면서 훌륭한 가창을 들려주고 있다. 당대 최고의 핑커튼이었던 베르곤치의 가창은 역시나 모범적이고, 그 외 이탈리아 출신 조연들과 합창단 또한 적재적소에서 극의 완성도를 높이는데 일익을 담당한다.

푸치니 오페라의 연주 역사에는 두 개의 큰 봉우리가 존재하는데, 하나의 이름은 "칼라스"이고 다른 하나는 "카라얀"이라고 생각한다. 이 두 이름은 지금까지 높은 평가를 받아온 연주들에 찬란하게 새겨져 그 광채를 발하고 있다. 하지만 "나비부인"에 있어서는 바비롤리 경의의 해석과 연주 역시 그들 못지 않은 가치와 완성도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이 음반은 그 수준에 비해 합당치 못한 홀대를 받고 있다. EMI는 GROC 외에도 두 개의 염가반 시리즈물로 이 음원을 재차 발매했는데, 가면 갈수록 가격은 저렴해졌으나 음반의 구성은 더욱 열악해졌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이러한 경향에 대해서는 심히 유감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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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28 15:26 2008/09/28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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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베르크 변주곡"이라고 하면 다음의 두 이미지가 여전히 대중적으로 깊게 자리잡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다. 하나는 그 잡초같은 생명력에 감탄할 수 밖에 없는 "불면증 치료용 음악" 루머이고, 다른 하나는 "굴드베르크"이다. 이런 이미지들에게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다면, 레온하르트의 1976년도 "골드베르크" 녹음을 대안적인 선택으로써 권하고 싶다.

올해로 탄생 80주년을 맞은 정격 연주계의 대가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는 도합 3종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녹음을 남기고 있다. 가장 마지막에 이루어진 1976년도의 녹음은 바흐 생존 당시의 시대 양식에 맞추어 연주되는 "골드베르크"를 듣고 싶다면 한번 쯤은 꼭 들어봐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평론가들과 애호가들로부터 높이 평가받는다.

피아노로 연주된 "골드베르크"에 익숙한 사람들이라면 하프시코드의 챙강거리는 음색이 자못 낯설고, 심지어는 시끄럽다고 느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첫인상들은 얼마 가지 않아서 세부까지 상세히 보여주는 명료함으로 대체된다. 특히 터치 하나 하나에 지극한 진지함과 집중력을 담고 있는 레온하르트의 명인기는 이러한 하프시코드 특유의 음색이 내는 효과를 더욱 강화시키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반복부가 모두 생략되어 있다는 점 또한 여기서는 흠결이라기보다는 오히려 명료성과 집중도를 강화시켜주는 탁월한 선택으로 보여진다.

연주 자체의 외형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연주로 표현하고자 하는 바에 있어서도 레온하르트의 "골드베르크"는 주목할 만 하다. 굴드가 보여준 낭만성과 자유로움은 분명 잊지 못할만큼 매력적이나, "진짜 그 시절 그대로"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레온하르트가 들이는 학구적인 분석의 산물인 이 음반에서 그려내고 있는 바흐의 면모 역시 그에 못지 않는 광채를 발한다.

이처럼 이 음반에는 바흐에 대한 그리고 "골드베르크 변주곡"에 대한 학구적인 분석과 접근의 결과물을 진지한 자세로 실체화시키는 명인의 숨결이 담겨 있다. "불면증 치료용 음악"이라는 루머도, "굴드베르크"의 매력도 온데간데 없다. 모든 '껍데기'를 날려버린 후 순수하게 있는 그대로의 바흐와 "골드베르크"를 온전히 맛보고 싶다면, 이 음반을 접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길이 될 것이다.

아직까지는 이 음반을 접하는 것이 쉬운 편이다. 특히 레온하르트가 탄생 80주년을 맞이한 올해는 더욱 그렇다. 기존에 DHM-BMG 레이블에서 나온 단독 음반이 여전히 시중에 유통되는 가운데, Sony BMG가 내놓은 레온하르트 탄생 80주년 기념 쥬빌리 박스 염가반과 DHM 레이블 창립 50주년 기념 박스반에 동일 연주가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이 시기가 지난 후에는 더이상 재발매가 되지 않아, 갈수록 구하기 어려워질 거라고 생각된다.

단일 음반으로 팔리던 연주가 염가 박스반으로 그것도 두 개의 별개 시리즈물에 각각 수록되었다는 것은 음반사들이 이 음원의 경제적 가치가 이제 거의 남아있지 않다고 판단했다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전에 비해 값싸고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은 반기지 않을 수 없지만, 이처럼 음악적으로 가치있는 명인의 연주가 갈수록 하찮게 여겨지고 있는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든다. 만약 참으로 그러하다면 정말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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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9/26 14:31 2008/09/26 1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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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주간 몰리내리-프란델리와 로마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유명한 "투란도트" 음반을 옆에 끼고 살았다. 지난 주에 쓴 글에서 밝힌 바와 같이 최근 관심을 자극하고 있는 작곡가가 올해로 탄생 150주년을 맞은 푸치니인데, 숱한 그의 걸작 오페라들 중에서 무엇을 먼저 들어볼까 생각하다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와 공간적 배경을 공유하는  바로 이 작품을 선택하게 되었다.

오페라의 내용은 매우 통속적이고 진부한 도식에 딱 들어맞는다. 나라를 빼앗긴 방랑의 왕자가 아름답지만 잔인한 공주에게 한눈에 반해, 그녀가 제시하는 죽음의 위협이 도사리는 수수께끼들에 도전하여 끝내는 사랑의 쟁취에 성공한다는, 인류 역사상 수천번 가까이 반복해서 사용됬을 성 싶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런 외형만 보고, 거들먹거리는 일부 평론가들처럼 "푸치니는 깊이가 없다"라고 말하는 것은 오만한데다가 위험하기 그지 없는 짓이다.

푸치니에게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자들은 내용의 통속성과 음악적 깊이의 얕음을 지적하는 경향이 있다. 그 비판을 일단 수용해보자. 그렇다 하더라도 푸치니의 음악이 지니고 있는 강렬한 낭만성과 귀를 기울이게끔 만드는 매력을 부인하지는 못한다. "투란도트"에서 가장 유명한 아리아인 "아무도 잠들지 못한다"만 해도 그렇다. 이 음반에서건 파바로티의 운동장 콘서트를 통해서건, 솜씨있는 테너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이 아리아의 선율과 감정 표현은 그야말로 듣는 이를 '잠 못 이루게' 만드는 힘이 있다.

노예 소녀 류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절대적인 헌신, 그리고 죽음의 비극적 과정 또한 "투란도트"에 있어서 꼭 언급해야 할 부분이다. 여기에서 푸치니의 탁월하고도 효과적인 선율은 슬픔과 안타까움을 가슴에 사무칠 정도로까지 증폭시킨다. 류의 마지막 아리아가 끝난 후에 터져나오는 칼라프의 "죽어버렸구나, 나의 불쌍한 류여!"라는 절규를, "무덤덤하고 무심하다"고 평가하면서 칼라프라는 등장인물의 심성을 깎아내리고 더 나아가 그런 인물을 창조한 작곡가마저 몰인정하고 경박한 사람으로 폄하하는 글을 본 적이 있다. 그 글을 쓴 이는 피 대신 오일을 몸 속에서 순환시키고 있는게 틀림없다.

작품 자체에 대한 감탄은 이 정도로 해 두고 음반에 관해서 얘기를 해보자면, 일단 푸치니의 고국인 이탈리아 출신 지휘자, 성악가들, 합창단, 오케스트라가 혼연일체로 매우 강렬하고 원색적인 감성을 내뿜고 있음을 먼저 얘기해야 할 것이다. 이성보다 감성을 더 앞세우고, 논리적이라기보다는 극적인 순간을 더 잘 묘사해내는 연주를 한 여름밤에 듣고 있는 것은, 그야말로 "북경의 잠 못 이루는 밤"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극중의 사건들을 눈 앞에 펼쳐지는 것처럼 생생하게 다가오게끔 한다. "이탈리아적인 열정과 감성"으로 가득찬 "투란도트"를 듣고 싶다면 이 음반은 피할 수 없는 선택이 되지 않을까.

물론 이 음반을 이른바 "전통적인 명반"의 대열에 올려놓은 주원인인, 코렐리와 닐손 두 주역의 빛나는 가창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의 표현은 상대적으로 약화된 면이 있지만, 그보다 우선적으로 칼라프 왕자는 영웅적이어야 하고 투란도트는 여신에 가까운 범접하지 못할 경외심을 불러일으켜야 한다. 최전성기에 이르러 있던 두 드라마티코 계열 남녀 성악가의 탄복할만한 스테미너와 고음 발성은 이 점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더할 나위 없는 완벽함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거기다 더해서, 드라마적인 측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인 류 역을 맡은 레나타 스코토의 열창 또한 잊혀지지 않을 성질의 것이다.

마지막으로 몇 가지 아쉬운 점들을 지적해야겠다. 녹음 연도가 1960년대인 데다가  ART 리마스터링도 적용되지 않은 탓에, 때때로 합창단과 관현악과 성악가들의 발성 밸런스가 잘 안 맞는 곳이 존재한다. 또 곧 발매될 EMI의 푸치니 전집 박스물에 이 음원이 포함된 탓에, 이제 위의 앨범 자켓을 지닌 쥬얼 케이스 전곡반으로는 구하기가 점점 힘들어질 것이다. 단일 작품만을 오롯이 수록한 전곡반의 여러 장점들이, 염가 전집 박스물의 경제성과 편리성 앞에 밀려나는 모습은 서글프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ps: 이 음반은 영국 "그라모폰" 2월호의 특집 기사에서 편집장 제임스 인번이 개인적으로 추천한 푸치니 음반들 중 하나이다. 앞으로 푸치니의 4대 오페라 - 라 보엠, 토스카, 나비부인, 투란도트 - 들을, 인번의 추천반들을 통해 하나씩 접해볼 요량임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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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25 20:13 2008/08/2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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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얀이 남긴 여러 개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 중, 국내에서 특히 평가가 좋은 편인 70년대 전집을 최근 들어보았다. 카라얀 탄생 100주년을 맞이하여 다가오는 9월에 재발매될 연주이나, 현재까지 알고 있는 바로는 새로 나올 음반은 딱히 음질 면에서 향상되었다는 말도 없고 가격은 예전 발매된 것과 거의 비슷하다고 한다. 그래서 독일 로컬로 출시된 DG Eloquence의 염가반을 구매하였다.

교향곡 전곡과 "코리올란", "레오노레", "에그몬트" 등 여러 서곡들이 포함된 총 6장의 구성으로 교향곡 전곡만 수록하여 5장으로 편성하는 전형적인 베토벤 전곡반 구성보다 한 장이 더 많다. 하지만 정작 실제 체감한 바로는, 5장짜리 구성의 타 지휘자들의 음반보다 되려 감상에 걸린 시간이 짧았다. CD 수가 한 장 더 많고 여러 서곡들이 포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는 뭘까.

카라얀과 베를린 필의 조합은 듣는 이로 하여금 딱 한가지 만큼은 확실히 보장한다. 그것은 바로 극상에 달한 오케스트라의 기능미이다. 순수하게 기술적인 측면에서만 평가해볼 때 카라얀은 '완벽'하다. 그의 방대한 음반 작업의 결과물들을 통털어 평균적으로 바라볼 때, 분명 그는 동시대의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연주에 있어서 실수나 착오를 일으키는 일이 적다. 아니, 거의 없다.

그러나 그 뿐이다. 카라얀의 대다수 관현악 녹음들은 단지 잘 만들어진 "레디메이드" 상품으로서의 가치 이상을 지니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일부 음반들과 오페라 음반들은 조금 다른 평가를 내려줄 수 있겠지만, 70년대의 이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그런 예외적인 사례에는 들지 못한다.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의 피아니시모, 완벽한 박자감각, 혼연일치하는 현의 놀림, 거기에 최고조에 달한 70년대 스테레오 녹음 기술이 더해졌지만, 그러한 미덕들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이 전집은 자동차로 치면 "쾌적한 승차감"을 제공하는데서 그치는 것이다.

푸르트벵글러의 영감어린 연주, 가디너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여는 재발견의 신고전성에 비하면 카라얀의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상대적으로 매력이 적은 편이다. 그래서 별로 큰 감흥을 주지 못한 채 쌩쌩 지나가 버린 것이리라. 새로이 베토벤 교향곡의 세계에 진입하려고 하는 초심자들에게는 이 음반이 매우 훌륭한 안내자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니 심하게 저평가할 것까지는 없겠지만, 그래도 곁에 가까이 두고 자주 들을만큼 아끼고 사랑하지는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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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09 12:53 2008/08/09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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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은 어느 경과구에 대해 그에게 물었습니다. ‘박사님, 여기는 얼마나 빠르게 해야 합니까?’ 해결을 보지 못한 물리학적인 질문이었습니다. 그가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아, 그건 어떤 소리가 나느냐에 달렸습니다.’”
- 세르주 첼리비다케

“서주에서 주테마로 넘어가는 이행부에서 그는 콘트라베이스 부분 다음에 현악의 시작 신호를 너무 작게 주어 손동작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콘서트마스터가 물었지요. ‘박사님, 시작 신호를 더 분명하게 주실 수 없을까요?’ 푸르트벵글러가 대답했습니다. ‘분명하지 않을수록 좋아요.’”
- 오렐 니콜레, 1947년 루체른에서 「레오노레」서곡 3번 연습 당시의 일화

“아주 느리게 연주하면서도 듣는 이의 머리 속에 전체를 생생하게 그려내는 일은 위대한 지휘자만이 가능합니다. 푸르트벵글러가 그런 사람입니다. 내가 직접 겪은 일입니다. 1950년 푸르트벵글러가 아르헨티나에서 「마태 수난곡」을 연주할 때 나는 보조 지휘자였습니다. 그의 속도는 유행에 뒤졌고 지독하게 느렸지요. 나는 그의 연주 방식에 전혀 동의하지 않지만 내면에서 끊이지 않는 그 거대한 흐름에 감탄했습니다. 그건 그한테서만 흘러나오는 것이었어요. 이 작품을 너무나 강렬하게 느낀 푸르트벵글러는 함께 연주하고 노래한 350명의 연주자들에게 그 느낌을 전달했습니다. 그건 최면으로까지 이어지는 심리적인 힘이었습니다.”
- 미하엘 길렌

“그는 연주를 자주 반복하지 않았다. 어떤 때는 한 악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한 번에 연주했고 마이크로폰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다. 덕분에 녹음은 훌륭했다. 그때 우리가 막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을 때 도입부가 일치하지 않았다. 당장에 전화벨이 울렸다. 푸르트벵글러는 수화기에 대고 소리를 질렀다. ‘여기는 미국이 아닙니다! 일치하는지 아닌지는 내가 결정합니다!’”
- 오렐 니콜레, 1951년 12월 도이치 그라모폰과의 슈베르트 교향곡 다장조 녹음 당시 일화

“푸르트벵글러가 3막 직전에 넣은 「레오노레」서곡 3번은 단원들이 자면서도 연주할 정도의 레퍼토리였다. 그러나 연습 내내 이 작품에 몰입해 있던 푸르트벵글러는 자꾸만 크레센도를 요구했다. 계속해서 크레센도가 이어지자 우리 콘서트마스터가 악보에 그렇게 적혀 있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총보를 들여다보았다. ‘그렇군요, 그래도 이게 더 아름다워요.’ 그토록 그는 음악에 빠져 주변의 것들은 모조리 잊어버렸다.”
- 발터 바릴리, 1953년 10월 12일 「피델리오」연습 중의 일화

*이상은 모두 헤르베르트 하프너, 이기숙 옮김, 「푸르트벵글러」(마티)에서 인용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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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전집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스톡홀름 필하모닉, 바이로이트 축제 오케스트라 & 합창단(EMI):
    이 푸르트벵글러 유일의 공식 전집에 대한 상세한 감상은 예전의 글을 참고하길 바란다. 거기에서는 '옥석혼효'라고 평가했지만, 그 후 여러번 감상을 거듭할수록 오래되어 세공이 깨지거나 무뎌진 채로 빛이 바랜 보석더미를 보는 것과 같은 느낌에 더 가까워지고 있는 음반이다. 명연이니 졸연이니를 따질 것 없이, 클래식을 듣는다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꼭 한번 쯤은 이 전집에 다다르게 되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여기 포함된 1951년 바이로이트에서의 9번 실황이야말로 푸르트벵글러의 연주 스타일에 있어서 일종의 중대한 분기점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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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설적인 전후 공연집"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Tahra):
    1951년에서 1954년까지의 일부 연주들을 총 4장의 CD에 수록하고 있는 음반. 전후 시기 푸르트벵글러의 실황 연주들 중에서도 특히 평이 좋은 것들을 선별하여 담고 있는데, 베를린 필하모닉과의 베토벤 교향곡 3, 5, 6번 연주, 1954년 루체른에서의 베토벤 교향곡 9번 연주, NDR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한 브람스의 교향곡 1번 및 하이든 변주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뜻 들어보면 전시 녹음들의 강렬함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력이 떨어져 보이지만, 들으면 들을수록 푸르트벵글러가 최만년에 도달한 경지를 느끼고 그 앞에 고개를 숙이게끔 하는 연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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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 교향곡 7, 8번 - 푸르트벵글러,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Orfeo):
    1954년 8월 30일 잘츠부르크 페스티발에서 있었던 실황을 그대로 담은 음반이다. EMI의 전집에서 조악하기 그지 없는 음질로 아쉬움을 남겼던 스톡홀름 필하모닉과의 8번 연주를 대체하기에 안성맞춤으로, 8번과 같은 '마이너'한 작품에 대해서도 푸르트벵글러가 연구와 탐색을 그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다. 50년대 중반의 녹음으로 음질도 푸르트벵글러의 모든 음반들 중에서 매우 좋은 축에 든다는 것 또한 장점이다. 그해 11월 30일에 영면한 푸르트벵글러로서는 빈 필하모닉과의 마지막 공식 연주였는데, 당시 그가 여러 지병들을 앓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연주 자체에서는 병기운 같은건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베토벤의 음악 그 자체를 가장 잘 이해하고 구현하는 거장의 모습만이 들어올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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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그너 관현악곡집 - 푸르트벵글러,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DG Eloquence):
    1949년부터 1954년 사이,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하모닉과 가진 여러 바그너 관현악곡 연주 실황들 중 일부를 발췌해서 수록한 음반. 시기도 장소도 제각각이고 그에 따라 녹음 상태도 들쑥날쑥이지만, 다행스럽게도 EMI 베토벤 교향곡 전집의 2번과 8번 같은 '재앙'은 없다. 1951년을 경계로 푸르트벵글러의 지휘 스타일이 좀 더 완숙해졌음을 확인해볼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해주는데, 1949년의 "명가수" 서곡과 1954년의 "장송행진곡"을 비교해보면 그 점이 확연히 느껴진다. 푸르트벵글러의 바그너 관현악곡집이라고 하면 EMI에서 나온 빈 필 및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스튜디오 녹음 연주들이 또한 유명한데, 언젠가 그쪽도 구해서 이 음반과 비교해보면 실로 재미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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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7/31 15:35 2008/07/31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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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La belle époque" , 19세기 말부터 세계 제 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 서유럽이 누렸던 '가장 좋았던 시절'. 이 시대의 향취를 자신의 작품들 속에 가장 잘 담아낸 음악가를 선정한다면 모리스 라벨은 아마도 0순위가 아닐까 싶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그의 작품은 틀림없이 "볼레로"일 것이다. 단순하고 짧지만 강렬한 멜로디의, 점층적인 강화를 수반한 반복은 듣는 이들에게 매우 강력한 감정의 파고 앞에 던져지는 것 같은 기분을 들게 만든다.

하지만 "볼레로"의 위풍당당한 허세만이 라벨의 전부가 아니다. 단지 "볼레로"로만 라벨을 알고 있다면 그의 다른 작품들, 특히 관현악곡과 피아노 소품들을 꼭 접해보라고 권하고 싶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의 애수 가득한 비탄, "엄마 거위"의 목가적 풍경, "밤의 가스파르"를 흠뻑 적시는 몽환의 이미지들, 그리고......

"벨 에포크" 시대의 딜레당트들이 느꼈을 그 모든 감정과 감성들을, 라벨은 자신의 작품들 속에 가감없이 수용해서 100여년 후의 우리들에게까지 전달하고 있는 것이다. 화려한 번영의 찬란한 외관 뒤에 드리워진, 의심과 불안과 두려움이 불러일으키는 깊고 어두운 퇴폐의 그림자가 라벨의 작품들에서는 느껴진다.

석양이 지는 어느 저녁에 라벨의 음악을 들으며 와인 반병을 비우게 된다면, 확신하건대 보들레르나 랭보가 된 것 같은, 너무나도 진짜같은 착각을 아주 짧은 한 순간 느껴볼 수 있지 않을까...... 라고 21세기의 보잘것없는 소시민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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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벨 관현악곡집, 앙드레 클뤼탕스, 파리 음악원 관현악단(1961~62): 오늘날에는 각국의 교향악단들이 지니고 있던 고유의 독특한 "지방적 특색"이란 것이 사라져버렸다고들 하지만, 1960년대에는 아직 그것이 존속하고 있었음을 체감케 해주는 음반이다. 프랑스인 지휘자와 프랑스를 대표하는 악단의 조합이 연주하는 라벨의 관현악 작품들은 프랑스적 감성이란 어떤 것인지를 확연히 보여준다. 특히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서 느껴지는 퇴폐적인 우아함을 동반한 우수의 이미지는 그야말로 절품이다. EMI 본사반은 폐반되었고, 현재 입수할 수 있는 것은 일본 도시바 EMI와 프랑스 EMI의 로컬반들인데 전자는 값만 비싸고 괜시리 여러장 사게 만드니 왠만하면 후자를 구할 것을 권한다. 하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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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벨 피아노 독주곡집, 파스칼 로제(1974): 얼마 전 집에 잠시 내려갔다가 동생이 사다놓은 것을 발견하고 몰래 들고온 음반. 라벨의 피아노 독주곡들은 다 모아도 대략 CD 2장 내에 다 들어가는데, Decca Double 시리즈로 발매된 이 음반 역시 예외는 아니다. 딱히 특기할만한 점은 없으나 라벨 고유의 감성을 솔직담백하게 연주하고 있다는 점에서 입문을 위한 레퍼런스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평가한다. 눈이 번쩍 뜨일 만큼 강렬한 인상을 주는 연주는 없지만, 그 대신 어느 한 곡 상대적으로 처지는 일 없이 평균적으로 '잘' 연주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한밤 중에 잠이 안 오거나 괜히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자연스레 손이 가게 되어, 최근에는 꽤나 총애(?)하게 된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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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7/24 02:04 2008/07/24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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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이라는 장르는 엄청나게 넓다. 하지만 그 중에서 실제로 대중적인 인지도가 있는 부류는 상대적으로 협소한 편이다. 잘 생각해보면, 클래식이라고 할 때 우리의 뇌리 속에 먼저 떠오르는 작곡가들은 대체로 B, M, W로 시작되는 성을 지닌 게르만계 음악가들이 대부분인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반 농담삼아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고전 및 낭만주의 음악 세계를 이렇게 호칭했다. "BMW".

그러나 아무리 맛있고 풍성한 식단도 계속 먹고 있다보면 질리는 법이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기에, "BMW"만 계속 접하고 있으면 저절로 뭔가 다른게 듣고 싶어진다. 대개는 장르 자체를 바꿔버려서 록이나 재즈 등으로 잠시 외도를 하지만, 개인적으로 거기까지는 가지 못하고 "BMW"가 아닌 다른 지역이나 다른 시기의 클래식을 이것저것 도전해보곤 한다.

마크 민코프스키와 "루브르의 음악가들"은 그러한 새로운 시도의 결과물들 가운데 성공적인 축에 속한다. 지휘자와 악단은 프랑스의 고유한 음악적 배경을 바탕으로, "BMW"에 가려져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프랑스 고전 음악가들의 풍요로운 세계를 들려주고 있다. 세련미와 다채로움을 겸비한 음색 그리고 축제적인 뉘앙스의 향연으로 축약할 수 있을 이들의 음악 세계에는, "BMW"와 게르만계 악단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빛과 색채감으로 이루어진 인상깊은 매력이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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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모, "상상의 교향곡" - 마크 민코프스키, "루브르의 음악가들"(2005): 지금의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분류에 따르면 장 필립 라모는 '고음악', 즉 바로크 시대의 음악가이다. 루이 14세 시기의 프랑스 음악가인 그는 후세에는 주로 오페라 작품들로 기억되고 있다. 이 음반은 "상상의 교향곡"이라는 작품을 수록하고 있는데, 실제로 라모가 쓴 작품은 아니고 민코프스키가 라모의 오페라 관현악들 중 일부분들을 가져와서 묶은 후 그와 같은 제목을 붙인 것이다. 바로크기 그랑 오페라 특유의 웅장함과 프랑스 음악 고유의 섬세함이, 악단의 세련된 기능미와 '에스프리'에 의해 잘 묘사되고 있다. 듣고 나면 개운한 느낌을 주는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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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제, "카르멘 모음곡 & 아를르의 여인 모음곡" - 마크 민코프스키, "루브르의 음악가들"(2008):
    민코프스키가 소속사를 Naive로 옮긴 후 처음으로 내놓은 음반. 프랑스 고전 음악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그의 새로운 도전은 바로 비제였다. 잘 알려진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 과 알퐁스 도데의 연극 "아를르의 여인"을 위한 반주곡에 포함된 여러 관현악곡들을 수록한 이 음반은, 연주 뿐만 아니라 고흐와 고갱 등의 화가들의 그림과 도데의 "아를르의 여인" 원작 등으로 풍성하게 꾸며진 내지로 애호가의 구매욕을 불러일으킨다. 19세기의 프랑스 낭만주의를 대표하는 음악가, 비제의 강렬한 인상주의 화파 풍의 색채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연주다. 언젠가는 꼭 남프랑스를 가보고 싶어지게 만든 음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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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J.H

2008/07/04 23:42 2008/07/04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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